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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Feb 07. 2024

나의 비밀 글선생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 쓰고 싶은 글감이 생기면 휴대폰 메모장을 켜 간단히 적어두곤 한다. 그중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브런치에 작가로 지원할 때 쓴 글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글감이 하나의 메모에 몽땅 적혀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스크롤의 길이는 날이 갈수록 무한증식 중이라 최근에 적은 걸 찾으려면 꽤 한참을 내려봐야 한다.


메모해 놨던 소재 중 실제 글로 발행된 건 삭선 처리하는 편이다


(잠시 딴 길로 새서) 어제는 평소 가보고 싶던 집 근처 카페에서 읽던 책을 완독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전 직장 동료가 무려 작년에 선물해 주었던 장강명 작가님의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책인데, 지독한 병렬독서 습관 탓에 진도가 더뎌 여전히 1/3 가량을 남겨둔 상태였다. 오전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며 해야 할 일을 마친 뒤 냉큼 카페로 달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 빠르게 책을 펴 읽기 시작했다.


정말 잘 쓰인 문장들을 읽다 보면 간혹 소위 말하는 글쓰기 뽕(?)이 잔뜩 차게 되는데, 글쓰기라는 행위로 인해 느낄 수 있는 벅차오름을 정확히 건드린다. 작가님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와 세련된 논리 전개에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드디어 책을 다 읽고 집에 돌아온 뒤엔 글쓰기 뽕이 사라지기 전 얼른 메모장을 켜 보물창고를 뒤져보았다. 묵혀두었다가 까먹은 소재는 없는지, 지금 떠오르는 생각과 엮어 쓸만한 건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려던 찰나, 문득 맨 위에 있던 브런치 작가 신청글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해서 9월 13일이 무슨 날이었을까 뒤져보니 월요일이다. 진짜 일하기 싫었나 보다. (물론 메모를 생성한 시간이 저 때일 뿐이지 업무 시간에 내내 붙들고 쓰진 않았다!)


작가를 신청하던 당시와 지금은 달라진 게 많다. 어느덧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사회생활 9년 차가 되었고(지금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이번 퇴사를 하면서 회사 알러지는 일시적으로 완치(?)되었다. 더불어 30+@에서 @의 크기는 3만큼 커졌으며 다녔던 회사의 수 역시 6개를 넘어섰다. 현실 친구 종종이는 더 이상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지 않기에 같이 쓰던 매거진 역시 활동을 멈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달라졌다고 느낀 건 '문체'다. 정확히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어려우나 호흡도, 문장을 끌고가는 스타일도 분명 무언가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나 요즘 쓴 글에는 일전의 유쾌함이 몽땅 사라진 것 같아 계속 고민이었는데 신청글을 다시 보니 그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동시에 잘 쓴 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예전에 쓴 글 중에는 감정에만 한껏 치우쳐 불평불만 쏟아내기 식으로만 적힌 창피한 문장도 많다. 독자는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배설하듯이 적은 글도 보인다. 눈에 띄지 않게 다 지워버릴까도 고민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러지 않았다. 남겨두고 종종 타산지석 삼을 셈이다. 그런 글들을 볼 땐 글쓰기 실력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건가 했는데, 이번에 보니 또 아니다 싶다. 2~3년이 지나 상황이 크게 바뀐 지금에 와서 읽어도 당시의 내 마음이 공감되고 궁금하고 재미있다 싶은 글도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잘 쓴 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내게는 별 의미 없는 짓이란 걸 깨달았다. 그저 더 많은 글을 쓰고, 좋은 글들을 더 많이 읽고, 나의 지난 글을 회고하며 좋은 점은 되새기고 나쁜 점은 고치면 된다. 간혹 독자분이 감사한 의견을 남겨주신다면 그것까지 성실히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사실 내 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보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에, 스스로를 위한 글선생으로서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아끼지 않는 성장하는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Unsplash의 Kristina Fl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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