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권리와 공유의 이상

by 황인석

저작권은 권리의 일종이다. 자신이 노력해서 갖게 된 재산을 빼앗기지 않고 소유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창작물을 생산한 사람이 그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활용하는 행위는 일종의 절도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작권과 일반적인 재산권에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재산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재산은 보통 공유가 불가능하다.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가져가 사용하게 되면 원래의 소유자는 그만큼 직접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하지만 창작물은 누군가 소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없게 되지 않는다. 영화와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거나 듣는다고 해서 닳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창작물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의 일종이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공공재에 가격을 부여하거나 활용을 제한하면 효용이 감소된다. 공공재는 무료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할 때 사회 전체의 편익 관점에서 최선이다.

사람들이 저작권을 침해하면서도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은 이런 연유일 것이다. 남의 집 물건을 훔치는 건 명백하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인 것 같지만, 복사에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창작물을 사용하는 건 좀 다른 것 같다. 더 나아가 오픈소스 운동처럼 지나친 저작권의 제약을 부정의한 것으로 보고 더 적극적인 공유를 지향하는 명분에 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공공재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창작물의 생산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창작물을 누구나 자유롭게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그 이용의 대가를 창작자에게 보상해 주지 못한다면, 창작 행위는 순수한 자기 만족을 동기로 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자되는 영화 대신 아마추어들의 독립 영화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고, 직업으로 진지하게 창작 활동에 임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은 특허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기술 지식은 공개되고 많이 공유될수록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 하지만 기술 지식을 발명한 사람이나 조직에게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거의 다 사라진다. 특허는 이러한 대립되는 가치를 조정하여 발명을 위한 보상을 제공하는 동시에 해당 기술이 사회에 공개되고 활용될 수 있게 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저작권도 창작을 위한 동기를 제공한다는 목적과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제도여야 한다.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이런 공리주의적 관점 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애써 만든 창작물을 누군가가 자신의 허락 없이 사용한다면 자신의 자연적인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특히 많은 창작자들이 부족한 수입과 생활의 불안정성 등으로 고통 받는 처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창작 분야는 고수익을 벌어들이는 소수의 창작자와 생계에 충분한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채 미래에 대한 희망에 의지해 창작 활동을 계속 하는 다수의 창작자들 간 격차가 매우 크다. 창작물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격차가 커서, 한 편의 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감동을 주기도 하는 반면, 소비자들이 할애할 수 있는 한정된 시간과 주의력을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속에서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은 소수에 그친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형편 속에서 노력과 성취의 가치에 합당하지 않은 보상만 받는다고 느끼기 쉬운 창작자들에게 저작권 문제는 민감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저작권의 수입이 소수의 기업이나 유명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류나 K-culture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콘텐츠 역량은 창작자들 뿐 아니라 투자를 하고 문화 사업을 일구어 온 다양한 관계자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들의 성공 덕분에 더 많은 창작자가 더 나은 여건에서 창작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저작권 제도는 문화 산업이 투자를 받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는 우리가 함께 향유하는 문화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우리 사회가 규정한 법규를 존중하면서 관행적인 저작권 침해 행위를 합리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좋은 콘텐츠를 지인들에게 선심 쓰듯 불법적 방식으로 공유하는 행위는 그러한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은 창작자들에 대한 배은방덕한 행위로서 여겨지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저작권이라고 하는 제도는 창작 환경의 유지 발전과 공공재로서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라고 하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명확한 정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과제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어 콘텐츠 유통 방식에 계속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CD나 테이프를 사서 음악을 듣던 시대와 비교하면 정기 구독으로 대부분의 음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세상은 음악 애호자들 입장에서 꿈과 같은 세상이다. 이젠 넷플릭스가 볼 것이 부족하지 않은 세상을 제공하고, 도서 분야에서도 구독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 구독 서비스는 소정의 구독료만 지불하면 콘텐츠에 무제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공재의 특성에 적합하다.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독점적인 플랫폼을 통해 형편 없는 보상만 받고 창작물을 제공해야 한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구독료가 부담이 되는 저소득층은 문화 활동을 누릴 수 있는 기회로부터 소외당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효용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나 구독 서비스를 통해 무제한에 가깝게 창작물을 누리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구독 서비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저소득층에게는 문화 바우처 같은 지원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도서 분야처럼 아직 구독 서비스로 제공되는 범위가 제한적인 분야에서는 그 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 그와 동시에 문화 산업이 계속 발전하기 위한 투자와 창작자들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들을 지향해 간다는 관점에서 저작권 제도가 역할을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하고, 아울러 전국민 대상의 문화 바우처 지원, 창작자 대상의 기본 소득 지원, 국가 재정이 뒷받침 되는 문화 산업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맞물려져 창작 활동의 촉진과 그 성과의 공정한 향유를 함께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저작권과 관련해서 인공지능이라는 주제에 대해 짧게라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창작 활동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비중은 앞으로 계속 커질 수 밖에 없으며, 그런 변화 속에서 기존의 저작권 개념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수준 높은 창작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창작자는 저작권을 보유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여 이루어지는 창작 활동에서 창작자의 기여 비중을 어떻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창작의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세상에서 저작권이 창작 활동을 통한 보상을 받는 데에 충분한 도움이 줄 수 있을까? 어떤 답을 내기는 어렵지만,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것과 그에 맞아 저작권 제도 역시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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