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발언 논란 유감

by 황인석

유시민 발언 논란에 대해 자꾸 관심이 가는 것은 잘못에 비해 지나친 공격을 받는 사람에 대한 변호 본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위 정치적 올바름과 결을 같이 하는, 자신이 가진 자랑스러운 평등 의식을 주창하는 모습들이 좀 보기 불편해서 그런 것 같다.

차별에 반대하는 건 당연한데, 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차별을 반대한다고 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도 많은 차별이 존재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차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차별인지 논하자면 말이 길어지겠지만 일단 이 정도 전제를 하고 말하겠다. (이런 문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 같은 말을 누군가 했다고 해서 그게 차별의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화를 내고 비난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 노골적인 차별 발언, 예를 들어 'XX한 사람은 열등하다'는 식으로 발언했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유시민 작가의 발언 같은 경우엔 좀 애매하다. 물론 그가 소위 '내재적 접근'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단정지어 말하는 방식은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발언을 놓고 마음 속의 엘리트주의를 드러냈다고 비판하는 건 과할 뿐 아니라, 분노를 발산할 기회를 주는 것 외에 누구한테든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발언이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고정 관념 같은 것을 드러내는 경우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발언자에게나 제3자에게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에 대해 발언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 말하고 끝내면 된다. 발언자의 무의식적 고정 관념 같은 걸 객관적인 근거로 증명해 보이기란 어려운 것이고, 각자가 지적을 받았을 때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 반성할 부분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 이상으로 다투는 건 소모적이다. 제3자 입장에서도 그런 발언이 어떤 고정관념을 표현한 것으로 누군가에게는 들릴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를 알면 된다. 그 정도로 소통하면 될 것을, 우리의 담론 공간은 상대를 쓰레기 수준으로 격하시키면서 거의 내전 상황을 만들어 보인다.

대의에 헌신하는 것을 삶의 기본 축으로 삼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수양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못마땅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이 수양이 부족한 사람은 잘못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잔뜩 갖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것이고 잘 의식되지도 않는다. 남녀차별적인 문화 속에서 자라 지금도 그런 생각들을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고 발언하는 어르신들이 있는 것처럼, 그 내용이 다를 뿐이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고정관념들이 줄어들거나 더 나은 고정관념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사회의 발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예를 들어 이준석의 주장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주장이 어떤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그 주장이 위험한 것이고 제대로 분석해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시민의 발언은 위험한가? 우리 나라에 노동자 출신이면 대통령 영부인 자리는 꿈꾸지도 말아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는 서울대 졸업생과 결혼하는 여성 노동자는 감지덕지하면서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가? 학력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를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강변하면서 그 도덕을 위반한 듯이 보이는 사람에게 비난을 집중하는 것이 차별 해소에 어떤 도움이 될까?

나는 그런 식의 도덕 검열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적 차별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우리 의식 속에 존재하는 허위 의식들을 제대로 응시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탕발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차별의식을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종의 언어 예절로서 차별의 문제를 덮어 버리고 예법을 어긴 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차별에서 자유로운 인간인 듯이 믿어 버린다.

학력이나 소득 등의 차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화에서라면, 사람들은 상대의 학력이나 소득을 갖고 놀리면서 농담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시민의 발언에 대해 정색하고 비난이 쏟아지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그만큼 학력이나 직업에 따른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이 심각하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그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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