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아닌 '의미들'을 따라 살기
전에 연재했던 <실용 철학 탐구 I>이 30편의 글을 채우게 되어 II편을 통해 남은 이야기들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작년에 내가 쓴 글들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메시지들을 모아 올해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삼고자 한다.
브런치매거진에 일주일에 한번씩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을 나 자신과의 약속으로 삼고 있는데,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많이 정리해가고 있다. 이전에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보강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새로운 관점을 얻기도 한다.
‘행복의 최대화’라는 개념이 마음과 삶의 방식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 되었으나, 작년에 그 생각들의 논리를 일관되게 구성해 보고자 꽤 노력을 기울였다. 나로서는, 이 작업이 삶을 대하는 기본 태도를 바꾸는 일이었다.
자유의지의 역설을 풀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개운치 않은 부분은 남지만, 삶의 자세를 취하는 데 있어 논리적으로 완성된 탄탄한 기반을 갖추려고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인지 모른다. 오히려 삶을 떠받쳐주는 철학이 완전할 수 없다는 것, 내 믿음과 의지 만으로 삶이 흘러가지 않고 우연과 운명이 개입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집을 짓는 건축가라면, 내 설계가 완벽하길 바라고, 그 설계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방식으로 실제의 집이 지어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삶은 그런 집과 다르고 나는 그런 건축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정원사에 더 가까울 것인데, 그것도 명확한 비전을 가진 정원사가 아니라 자라는 식물들의 성질도 제대로 모르는 채, 어떤 식물은 베어내고 어떤 식물에는 비료와 물을 주면서 어떻게든 그럴 듯한 모습으로 정원이 형태를 갖추기를 바라는 아마추어 정원사에 가까울 것이다. 아니면 도통 말을 듣지 않는 고집센 사춘기 아이들을 기르면서 조금이라도 인생에 도움이 될 조언을 하고자 애쓰는 현명하지 못한 부모의 처지가 더 나은 비유일 수도 있겠다. 부모의 조언이 얼마나 현명한지와는 별개로 아이들의 인생은 부모의 생각과는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뭔가를 할 수 있고 시도해 볼 수 있지만, 내 삶은 내 철학이 부분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통제 불가의 대상이다. 내 노력들은 중요한 요인이 되겠으나 유일한 요인들이 아니며 다른 힘들과 어울려 이 삶을 구성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내가 ‘행복 최대화’의 관점을 가진다고 해서 행복이 최대화되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관점을 버린다고 해서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내 성향이 온전하게 극복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전의 타협적이고 애매한 태도를 벗어나 올해는 더 단호한 태도로 ‘행복 최대화’의 관점에 저항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나는 내 인생의 행복의 총합이라고 하는 개념을 추상적인 거짓 관념으로 거부하는 일에 단호한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
쾌락을 최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벤담은 어리석었고 정신적 가치니 질적 효용이니 하면서 이를 조정해 보려고 한 밀의 시도도 조잡한 수준이었다.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삶은 구차하고, 부조리하고, 부자유하고, 부자연스럽다. 사람의 마음은 행복을 최대화하라는 명제에 어울리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에 어울리는 것은 그 마음을 무상하게 들어오고 나가는 ‘의미들’, 여러 가지 의미에 가중치를 두어 합산한 종합적인 가치가 아니라 다른 의미들과 비교되지 않는,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들을 지향하는 것이다. 구차한 것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의 행복을 다른 행복과 비교하는 마음이다. 행복이든, 충동이든, 사랑이든, 추론에 의한 판단이든, 정의감이든, 책임감이든, 동정심이든, 그 마음과 행동을 이끌고 가는, 그 순간의 의미에 충실한 것이 구차함과 반대되는 고상함이다.
작년에 구성하고자 노력했던 여러가지 논리들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더해서,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삶의 태도에서 단호하게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이 올해의 기본 방침이다. 그러한 강박의 빈자리에 나는 더 다양한 의미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들이 떠오르고 가라앉는 변화에 순응하면서 각각의 의미들에 보다 충실하게 헌신하는 하인의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아무 기획 없이 살 수는 없고, 순간순간의 마음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갖기 위한 목표, 전략, 지침들이 필요하다. 여러 의미들 간에 갈등과 충돌이 일어날 때 조정을 하기 위한 기준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매뉴얼들은 완벽할 수 없다. 나는 불완전함과 오류를 감수할 것이다. 나는 무상하게 변화하는 의미들 각각을 매 순간의 유일한 주인으로 충실하게 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