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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빛 Aug 26. 2023

편리함과 외로움 그 사이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현상

오랜만에 김혜수가 나오는 드라마 '하이에나'를 다시 보다가, 세탁소에서 주지훈과 만나는 장면에서 시선이 멈췄다. 타인을,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만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그렇게 알아갔던 적이 언제였나.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울 정도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나니 새로운 공간에서 예상치못한 타인을 만나는 드라마의 장면이 어쩐지 꿈처럼 느껴졌다. 


코인세탁방이라는 드라마 속의 공간도 새로웠다. 이제 왠만한 가전은 집안에서 해결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한여름 장마철에도 집에서 세탁물을 말릴 수 있는 시대이니 섬유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집에서 해결 못할 것들은 거의 없다. 집에서 세탁도 하고, 건조도 한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수 혼수 품목도 늘었다. 실제로 세탁기는 '세탁기+건조기'로, 청소기는 '로봇청소기'로 품목이 늘었고 냉장고마저 '김치냉장고'가 세트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스타일러'와 '식기세척기'도 하나의 필수 품목이 되었다. 맞벌이를 해보니 알겠다. 녹초가 되어 집에 왔는데, 방바닥의 머리카락과 아침을 먹고 난 뒤 쌓여 있는 그릇들을 보면 답답해진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가전 품목이 늘 수 밖에 없다. 


세상은 분명 편리해졌다. 외식과 배달이 늘었고 청소도 로봇이 대신 해준다. 설거지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지치고,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아지고 있단다.


20세기와 21세기를 모두 살아 내면서 느낀 '이상한 느낌'과 이 흐름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묘한 아이러니함은 '인간의 한계'와 '과학기술의 발전' 사이의 줄다리기처럼 느껴진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집안에는 3대 이모님(로청기, 건조기, 식세기)이 들어왔고 덕분에 맞벌이 가정에서는 어려움을 조금 덜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에게 요구하는 역치는 늘었다. 더이상 집안의 일이 핑계가 되지 않는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조금 더 편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려운 사회를 견디기 위해서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 사람이 도태되기 쉬운 사회가 되었다고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들이 딩크를 선언하기도 한다. 자아실현, 경제적 자유와 육아를 같은 선상에 놓게 되면 일어나는 일이다. 


최근, 나 역시 딩크를 고민했다. 점점 기후 위기는 몸으로 느껴지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고군분투 해야 하는데 아이가 이 어려움에 몫을 보탤 때 나는 버틸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고 생각한다. 나같은 사람이 많을게다. 나의 의지로 딩크를 선택했다기 보다는, 외부 요인으로 딩크를 선택하고자 하는 혹은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


낭만이 사라진 21세기를 기술의 편리함이 채우고 있다. 그래서 결핍을 느끼기는 어렵다. 오히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이전 세대들은 현 시대는 편리한 시대라고 이야기 한다. 무엇이 부족하냐고. 우리 때는 밥을 못 먹는 사람도 많았다며. 맞는 말이다. 지금은 굶어 죽는 사람이 그때 보다 줄었다. 하지만 그때 보다 행복한 사람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배려 또한 사라졌다. 내 것을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 타협하면 질 것만 같은 예민함. 내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늘어 요즘에는 대화하는 재미도 많이 사라졌다.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SNS 셀럽은 많은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PR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기 바쁘다. 


코인 세탁방에서 사람을 구경하던 아날로그 시대의 단면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네스프레소 등 커피머신이 인기를 끌면서 카페에 가야 할 핑계도 줄었다. 타인과 연결될 수 있었던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모니터 뒤에 앉아 SNS를 통해 소통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한다. 좋은 것만 보여주는 매체 떄문에 박탈감을 느껴 오히려 힘들다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어디에서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할까.

편리해진 생활과 정서적 만족감이 모두 충족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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