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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r 29. 2024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브런치에 잡스러운 신변 글을 쓰느냐고.. 그래서 내가 답했다. 혹시나 돈이 될까 하여 쓰기 시작했노라고.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감히 나의 글이 돈이 될 줄로 생각했었다. 어느 후배의 지적처럼, "뒤늦게 남녀상열지사의 세계관에 입문한 자가 신세계의 조화에 놀라고 감동한 나머지 어쭙잖게 흉내 내며 써 내려간 소설"이라고 평했던 소설들을 썼던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사태 파악에 있어 매우 신속하고 객관적인 사람에 속하는 편이다. 나의 글이 돈도 되지 않을뿐더러 상상력도, 사건을 창조하는 스토리도, 기획력도 빈곤한 한낱 허접하고 시시한 글나부랭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고시 공부하다가 청춘 시절을 다 흘려보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어리석은 전철을 밟을 순 없었다. 글도 재미없는데 사람마저 어리석기까지 하다면 이거야말로 진짜 난감한 일이지 않겠는가. 또 다른 어떤 선배는, 나와 남편을 즉각적으로 감추지 않고 까발리는 나의 행태에 대하여 위태로움마저 느껴진다고도 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직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남편과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남편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런치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나 학원도 아닌데, 구태여 가족들에게 꼭 말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인다는 것이 내 대답의 하나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이 고작 나의 가족과 친구들과 동문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있을 뿐인데, 에세이의 속성 상 나의 경험세계에 비추어 글이 나오는 건 당연한 노릇 아니겠는가.

그중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남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의 글에 남편이 단골처럼 등장하게 되었을 뿐이다.


부모님을 돌보며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내는 동안, 나는 빈 껍질의 육신에 겨우 숨만 붙이며 살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나의 글을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쓸데없이 굳건했다. 어차피 돈도 안 되고 이름도 없는 글인데, 브런치에 글을 쓰든 안 쓰든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우리의 인생에서 정작 상관있는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지도 모르겠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렇게 아무 글도 쓰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그럭저럭 지내고 있을 때였다. 아직은 수도권에 살고 있는 친구가 얼마 후 귀향을 앞두고 "마당 있는 집"을 알아봐 달라고 하였다. 친구와 나는 차로 7~10분 거리에 현대백화점이 있는 도심 속 시골 마을로 향했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아카이브를 겸하고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친구와 함께 그 마을 안에 있는 절을 찾아 올라갔다. 그날 절에 방문할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동네에 절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친구는 그날 절에 가서 기도하면 간절한 소망 하나가 이루어지는 '좋은 날'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친구가 대웅전 불전함에 파란색 지폐를 몇 장 집어넣었다. 부처님 앞에서 절을 올릴 때는 가운데서 올리는 게 아니라고 말하며, 친구가 가운데 자리를 비워두고 비스듬히 사선에서 절을 세 번 올렸다. 나는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서 절을 드렸다. 큰 법당을 나오며 친구가 내게 물었다. "무슨 소원 빌었어?" 낮은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응,  마음의 평화~"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소원도 참 소박하구먼."


대웅전 옆으로는 절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건물이 대웅전보다 더 높이 세워져 있었지만 아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늘은 다른 계절 못지않게 푸르고 빛이 났다. 벚나무에는 피어나고 싶은 꽃망울들이 조금 더 길게 웅크리고 있고, 봄바람은 다소 차가운 입김을 내뱉으며 섣부른 꽃망울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벚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웅장해지고 꽃들을 더 많이 피우기도 하는데, 늙어가는  마음의 언덕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꽃 하나 피우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친구가 불전함에 시주한 돈으로 나는 그날 간절하게 마음의 평화를 소원하며 빌었다. 그리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브런치에 적어본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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