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재판, 아이가 소년원에 갔다.

가정법원 국선보조인으로 맡은 첫 사건

by 소만

첫 재판을 끝내고 왔다.

아이는 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갔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였다. 동기들이 내게 결과를 묻지 않을 정도로. 그럼에도 나는 마음이 영 안 좋았고, 안타까웠고, 결과에 실망했고, 속상했다.


재판 직전에 아이 어머니를 만나서 탄원서를 받고 아이가 작성한 반성문 복사본을 드렸다. 아이 어머니도 예상하고 계셨다. 아이가 나오지 못할 것임을.


내 직전 재판은 내 동기가 맡은 우범사건이었는데, 아이가 같이 나왔다. 시설로 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너무 부러웠다. 나도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재판정에 들어갔다.


판사님은 싸늘했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소년재판으로 넘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이는 울면서 돈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돈 벌고 싶어서 모의했다고.

아이 어머니는 재판 들어가기 전부터 우셨다. 소리 없이.


나는 재판정에서 아이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판사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대답할 때 더 부담될까 봐 그런 것도 있었고, 내 간절한 눈빛을 판사님이 참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혼내기 전 국선보조인에게 할 말 있는지 먼저 물어보셔서, 준비해 온 이야기를 모두 했다.

판사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을 보시다가, 중간에 나를 바라보셨다. 그때 나는 내 간절한 마음을 모두 담아 ‘보호소년은 00의 나이에 구금되어 현재까지 00 구치소와 소년분류심사원에서 000일째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고 말했다.


마치 서울대 로스쿨 면접 때 내가 교수님들께 간절한 눈빛을 보였던 것처럼, 이번 재판 때 판사님께도 그랬다.


내가 분명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생활했다’고 말했는데, 그 뒤에 판사님께서 아이 혼내시면서 심사원 생활도 불량했다고 말씀하셨다. 아이가 벽에 욕설을 적어서 벌점을 받았다고.

아이에 대한 모든 기록을 볼 수 없는 나로서는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아이가 내게 거짓말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아이는 그 나이에 벌써 재판을 수 회 받은 아이니까, 내게 거짓말한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니까, 객관적으로. 그리고 나도 예상했다. 내가 속을 수 있음을.


나는 속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과정 내내 마음을 다했다. 아이를 믿어주고 싶었다. 네 곁에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슬쩍 바라본 아이는 혼이 빠진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


재판 내내 아이는 불안 불안했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죄송하다고라도 해야 할 타이밍인데 할 말 있냐는 판사님의 물음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거나, 마지막 발언 해보라는 판사님께 ‘그전에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거나.

나는 속으로 '죄송하다고 해!!!!!!', '부탁은 무슨 부탁이야!!!!!'라고 소리쳤지만…


아이는 어머니를 한 번 안아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한 달 반 만에 어머니를 만났다. 그걸 알기에 나는 재판 전에 아이 어머니께 학생 손 좀 잡아달라고, 학생이 심사원에서 어머니 걱정을 많이 했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 밑의 동생들을 케어하느라 바쁘셔서 면회도 자주 못 오시고, 아이는 어머니에게 각별했다. 엄마를 항상 그리워했다. 본인을 만나러 올 사람이라고는 경찰과 변호사밖에 없는 곳에서, 매 순간을 평가받으며 혼자 버티고 있었다. 그 나이에.


아이는 어떤 처분을 받든 달게 받겠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판사님은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아이와 아이 어머니를 보고 조금 누그러지셨다. 내가 오늘 어떤 처분을 하든지, 너는 형사재판받다가 소년사건으로 온 건 이미 엄청난 선처를 받은 거라고. 소년처분은 전과도 안 남으니까 마음잡고 잘 살라고.

아이 어머니께는 면회 자주 가시라고, 아이가 마음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하셨다.


나는 달리 처분의 여지가 없다는 판사님의 말씀이, 그때까지도 간절해하는 내게 하신 말씀처럼 들렸다.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이 사건은 어떤 판사가 맡아도 같은 결론이었을 거라고. 처분이 예상이 간다고.

판사님은 이미 내가 보조인의견서에 구구절절 이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열 가지 이유를 쓰신 걸 읽으셨을 테고,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간절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아이가 소년원에 가게 될 것임을. 담당 변호사님과 함께 일했던 동기들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애써 부인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길을 찾으려고 했다. 실제로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 학교 담임선생님께 탄원서를 받아냈고 처분 방법을 찾았다. 아이를 위해.


아이의 마지막 발언을 끝으로 처분은 10호, 소년원 장기 송치가 나왔고, 아이는 바로 들어가야 했다. 바로 소년원에 가야 했다.

들어가는 길에,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가 나를 딱 바라보고 들어갔다.

나는 아이에게 웃어주지도,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고, 아이도 나를 무표정하게 잠시 바라보고 들어갔다.

나는 웃음이 안 나왔다. 밝은 표정이 안 나왔다.


판사님께 인사하고 보호자와 함께 나왔다.

아이 어머니는 계속 우셨다.

이것저것 설명해 드렸다. 오늘 처분받은 건 7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다. 항고하시려면 9층 가셔서 항고장 접수하시면 된다. 오늘 10호 처분 나온 거 지금 아이 다른 형사재판받고 있는 곳에 제출하시면 소년사건으로 송치하실 수도 있다.

이 사건 형사재판에 대한 항고는 직전에 기각되었다는 통지서를 받으셨다고 했다. 이틀 전에. 다행이었다.


객관적으로 아이는 ‘과거의 일’로 교도소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아이에게는 ‘과거의 일’은 전과도 안 남을 거다.

다만 경찰 조사받았다는 기록은 평생 본인을 따라다녀서,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기면 그 기록이 다 뜰 테고, 항상 그 기록에 대해 질문을 받을 거다.


결국 이 아이는 또래들이 고등학교 졸업하는 시기에 소년원에서 나오게 됐다.

이번 재판이 아이에게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없어야 할 테지만.


보호자에게 미리 준비한 책과 편지를 드렸다. 나중에 아이에게 전해달라고.

그렇게 이 아이, 이 사건은 내 손을 떠났다.

결과가 좋았으면 후련했을 텐데, 첫 사건은 이렇게 내게,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X개월 간 아이가 구치소와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든 짐과 함께, 어머니가 가셨다.

1시간 넘게 재판정 앞에 있었는데, 이 아이만큼 짐이 많은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오래 갇혀있었다는 뜻이겠지.


내가 심란하다는 걸 내 동기들과 담당 변호사님 모두가 알았다. 변호사님은 나를 콕 집어서, 000 학생이 마음이 많이 안 좋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마지막 단체사진 찍는 데 웃음이 안 나와서 애를 먹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더니 역시 부자연스러웠다.

도저히 웃음이 안 나왔다. 모두가 예상했다지만 나는 끝까지 ‘정해진 결과’를 부인하며 최선을 다했고, 아이는 눈앞에서 10호를 받고 소년원에 갔으니.


동기 언니가 나에게, 너는 정말 좋은 판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아이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고.

고마웠다.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기분이 좋았다.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간단하게 먹었는데, 저녁도 잘 안 들어갔다. 자꾸 아이 생각이 났다. 먹으면서도 자꾸 서울소년원 생활을 찾아보게 됐다.

이 아이는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이 사건은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니다. 아이는 본인의 인생을 살 거고, 나는 내 인생이 남았다.

아마 다시는 이 아이를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서로의 인생에 접점이 있었을 뿐.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인연이다. 아이는 00 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받다가 00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고, 그곳에서 다시 XX 가정법원 소년부로 이송됐다. 그게 한 달 전이었고, 판사님은 이 사건의 국선보조인으로 나를 지정하셨다.


다른 사건을 맡은 내 동기들은 판사님이 그렇게 밉다는데, 나는 판사님이 밉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이 아이에 대해 나보다 더 상세한 기록을 읽으셨을 테고, 판사님은 본인의 일을 하시는 거니까. 그게 내가 원하는 결과는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로 이 사건 형사재판에 대해 항고한 검사도 안 미웠다. 본인의 일을 하시는 거니까.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그리고 나도 각자의 위치에서 본인의 일을 하는 거니까.



첫 접견 때 아이는 내게 벌점 14점에 대해 '4점은 단체벌점, 10점은 실내운동과 부정서신으로 받았다'고 했다.

두 번째 접견 때 아이는 ‘생각해 보니 4점이 단체 벌점이 아니었고, 그중 3점은 취침시간에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서 벌점을 받았고, 1점은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말미에, 부끄럽다고 했다.


욕설로 벌점 받은 사실을 내게 알리지 않은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이가 밉지는 않다. 좀 괘씸하기는 한데. ‘내가 그렇게까지 믿는다고 했는데도 거짓말을 해?!’ ㅎㅎ…


아이는 부끄러웠을 것이다. 처음 보는 어른에게, 본인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아이에게 나는, 내가 생각해도 다정하게 대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냐, 주말은 잘 보냈냐 묻고, 주변에 본인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

궁금한 게 많았는데 기억이 안 난다며 초조해하는 아이에게, 천천히 생각해 봐도 된다며 아이를 달래고.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고,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부모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엄마 말씀대로, 이 아이가 구치소도 들락날락하고 경찰서를 드나들고 그 나이에 재판을 수 회 받아도,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아이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울면서 소년원 가는데 뭐라도 하고 싶겠지.

그래서 나는 항고장을 쓰러 가신 아이 어머니도 이해됐다.


이 아이는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법정에서 본다는 건, 다시 잘못을 저질렀거나 힘든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니까.


좋은 법조인이 되고 싶다.

그 마음으로 피곤한 심신을 이끌고 와서 공부했다.


해는 다시 뜨고, 지고. 수 백 번을 반복하면 그 아이도 다시 사회에 나오겠지. 나도 변호사가 되겠지.


그렇게 내 첫 재판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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