늬들이 낭만을 알아?
우리는 여전히 낭만을 가진 세대다
가끔 젊은 세대가 우리를 보며 말한다.
“맨날 꿀 빠는 어려운 거 모르는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우리는 안정된 직장, 집, 자산, 여행, 취미를 누리며
인생을 즐기는 세대일 테니까.
그들에게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어떤 안식의 지점에서
우리는 와인을 홀짝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존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낭만은
결코 공짜로 얻은 꽃이 아니다.
우리는 전쟁과 식민지배의 패배감에 압도되지 않은
한국 최초의 세대였다.
무너지고 찢기고 빼앗긴 역사의 잔해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 폐허의 재건 속에서 억압받으며 자란 것도 아니다.
다만, 막 시작된 “살 만한 시대”의 첫 번째 세대였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훨씬 낯설고, 거칠고, 위험한 환경이었다.
우리는 사회가 돌봐주지 않는 모래알 같은 구조 속에서 자랐다.
우울증? 공황장애?
그건 의지 박약한 사람의 핑계였다.
학교폭력?
“당하는 놈이 그럴 만 하니까 당하는 것”이었다.
교사의 폭력은 교육의 일부였고,
학생은 맞으며 새겨야 할 존재였다.
과오를 말하는 자유는 없었고, 견디는 책임만 있었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잣대로 우리의 과거를 재단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 보고 우릴 비웃는다.
“때를 잘 만나 호사를 누린다”고.
하지만 그 시절은 지금의 2030이 영화속애서나 간접경험할 수 있는 야만의 시대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야만을 견딜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했다.
그 시대에 살면서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
둘째,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버텼다.
망가지며 배우는 법을 터득했고,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어떤 실패는 성장의 일부가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리는 낭만을 얻었다.
그 낭만은 고통을 잊은 자의 도취가 아니라
전쟁이나 식민 지배로 생물학적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첫 세대가 새로히 견뎌야 하는 신개념 고통을 견뎌낸 자가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숨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말한다.
우리는 기득권이라고,
불평등의 수혜자라고.
그들 눈에는 그리 보일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으로 먹고살 여유를 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생존만이 아닌 성장을 고민할 수 있었던 세대다.
우리 위 세대는 생존을 위해 몸을 불살랐고,
우리는 그들의 어깨 위에서
처음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을 낭만이라 부른다.
그리고 나는 부끄럽지 않다.
우리 세대가 싸워 얻은 건
경제적 풍요만이 아니다.
인권, 자유, 민주주의, 교육, 노동권.
지금 젊은 세대가 당연하다고 누리는 그 모든 것은
우리의 “불편한 목소리”와 “피와 땀”을 거쳐 왔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았다.
흉터투성이였고, 서툴렀고, 때로 잔인했다.
그러나 악을 견디며 옳음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붙잡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우리를 비웃을 때마다
그들을 비웃게 된다.
우리는 똥과 된장을 몸으로 구분하며 살아남은 세대다.
그 말 속에는 우월감도, 훈계도 없다.
단지 살아남은 자의 기억과 자존이 있을 뿐이다.
그래,
우리는 아직 낭만이 있다.
단지 그 낭만이 삶을 얕게 즐기는 허세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비로소 자유롭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 본능적으로 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4050이 그래서 제일 간지 난다.”
우리는 전쟁의 잔해가 아닌
미래의 설계 속에서 자란 첫 세대였고,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살아온 마지막 세대였다.
그 긴장과 모순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웃고, 사랑하고, 낭만을 말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곱씹을 것이다.
왜 우리 세대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지.
왜 우리가 여전히 목에 힘을 주며 살아가는지.
왜 상처를 지닌 얼굴로도 웃을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모니터로가 아니라 살면서 직접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