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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azy ivan Apr 22. 2024

우연과 인연

그를 만난 썰



2005년 겨울,


몬트리올에서 너무 무료했던 난

방학을 맞아 부모님 몰래 한국행 비행기표를 샀어.


몬트리올-시카고 경유-한국 루트 비행기였고

몬트리올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시카고에 내렸지.


시카고에서 보딩을 하고 너무 졸려서

앉자 마자 벨트를 하고 졸기 시작 했어.


한참을 졸았는데 뭔가 이상한거야.


보딩 한 시간으로부터 2시간이 지났는데  

비행기는 아직 시키고 땅 위.


스튜어디스를 불러서 뭔 일인지 물었지.  

스튜어디스 왈,

“너무 추워서 비행기에 water system(?)이 얼어서 지금 연착 되고 있다”는 거야.

뭐야… 하면서 주위를 살폈는데

신기하게도 내 옆으로 한국 여자 넷,

나까지 다섯이  

누가 일부러 그렇게 지정을 한 듯  

쪼로록 앉아 있었던거지.

비행기가 원래 시간에 출발 했다면

그냥 말 한마디 안붙이고 한국으로 갔을텐데,

그렇게 다섯이 United Airline 욕을 미친듯이 하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


한 2시간이 또 그렇게 지나고 결국 비행기는 결항이 됐고,

우리는 시카고 공항 근처 호텔로 안내 됐지.


나는 시카고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던 언니 한 명과,

신기하게도 몬트리올 나와 같은 학교에서 박사를 하고 있던 언니와

같이 방을 쓰게 됐고

우린 호텔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밤새 수다를 떨면서 놀았지.


그 다음날 날씨가 살짝 좋아졌고,

그렇게 비행기는 한국을 향해 떴어.

비행중에 서로 싸이월드 아이디를 교환 했고,

그 중 같은 멕길이었던 언니는

몬트리올로 돌아오는데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지.


그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너무나 씐나게 노느라

내가 연락처 쪽지를 내가 잃어버린거야.

솔직히 얘기 하자면 한국에서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 쪽지를 찾아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것 같아.

그렇게 돌아오는 비행기를 2주 연장까지 하면서 씐나게

2005년 겨울을 보내고

난 몬트리올로 돌아왔지.




몬트리올로 돌아와서 짐정리를 하는데,  

백팩 안 주머니에서 United Airline 로고가 찍힌  꼬깃한 메모지를 발견 한거야.  


‘아! 그 때 그 연락처!’


늦었지만 연락을 해야겠다 하고 싸이월드로 접속을 했지.  

다행히 다 연락이 됐고

같은 몬트리올 땅에 있었던 멕길 언니는

왜 이제야 연락 했냐며 당장 만나자고 했어.  

조만간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


그러다가 2006년 4월 30일 저녁에  

언니와 저녁을 먹기로 했어.

몇 주 전에 전남친과 헤어지고  

그 간 찐 살이나 빼야지 하고  

미친듯이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지.


근데 언니가 그러는거야.


“내가 시간이 꼬여서 그러는데  저녁 때 다른 친구도 불러도 될까?”


난 항상 그 언니가 얘기 하던

일본인  룸메를 데리고 오나부다 했지.

Gym에서 한 2시간 가량 운동을 할 계획이라서

운동 끝나고 배고프면 불행하니까  

all you can eat 스시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어.




땀에 쩔어서 야구모자를 푹 눌러 쓰고  

운동복 고대로 스시집으로 등장을 했어.

근데 그 언니 옆에 앉아 있는 건

여자가 아니고 남자.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지.

남자 사람이던 여자 사람이던 뭐  

나 지금 소개팅 나온거 아니잖아?


일단 한국 사람이라고 하길래  

한국말로 어색하게 인사하면서  

내 시선은 메뉴판에…

너무 배고픈 나머지 한마디 했지.


“제가 시켜도 되죠?”


그러고는 메뉴를 가열차게 시켰지.

먹는 내내 얘기가 끊이질 않았어.


세상에…

이렇게 아무 토픽이나 던지는데  얘기가 끊기지 않을 수 있다고?


그러다가 결혼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몇 주 전에 헤어진 남친 이후  

“세상에 나보다 잘난 놈 없어서 결혼은 못할꺼 같다”는 나에게 남자는


“그럼 잘난 놈이 있으면 문제 해결이네요” 라는 말을 던졌지.


“그렇…겠죠?”

난 또 수긍이 빠르니까.


그렇게 얘기가 재미있게 흐르는 걸  

당시까지 난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었어.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스벅으로 자리를 옮겼고,

스벅이 닫는 10시엔

급기야 새벽 3시까지 하는 펍으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계속 이어 갔지.


얘기는 역시 끊기질 않았고  

펍이 닫는 3시가 됐을 때는

이젠 피곤해서 더 얘기를 할 수 없어 너무 아쉽기까지 했어.


“내가 전화번호 exchange해줄까?”

언니가 물었지.


근데 그냥 그 땐 왜 그랬는지,

“뭘 굳이요. 나중에요. 다음에 또 같이 만나요”

하고 말았어.


얘기가 그렇게 재미있게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그런 상대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당시 어렸던 나는 몰랐던거지.


그냥, ‘재미있었네.’  

그게 다였으니까.


그리고 그 간의 경험으로 일단  

그가 공부 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닥 안땡기기도 했어.


그도 그러자고 3신데

일단은 집으로 가자고 했지.


그러고는 다음 날이 밝았어.

수업은 다 오후에 있었으니

느즈막히 일어나서  

베프랑 어제 있었던 일을 막 전화로 수다 떨며  

컴터를 켰는데

싸이월드에 쪽지가 와있는거야.

난 아직도 앱에 unread message badge 뜨는 거  못냅두거든.

당장 열었지.


그였어.


“어제 잘 들어 갔어요?.”


싸이월드 얘긴 안한거 같은데

어떻게 내 싸이월드를 알았을까 다 비공인데 싶다가

아….언니 계정으로 파도타기 했겠구나 했지.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가 당연히 다음날 연락처를 줄 줄 알았는데 연락이 없어서

원래 메세지 하는 사이도 아닌데  괜스레 msn으로  

“아..누나 점심 먹으니까 졸립네요..”등의  쓰잘떼기 없는 메세지를 보냈었데.  

그럼 “아! 연락처 주기로 했지!? 하면서 줄 줄 알고.


언니는 또

내가 나중에 같이 보게 되면 보자라는 내 말을

연락처 주지 말라는 걸로

찰떡같이 알아 듣고

일부러 내 연락처를 넘지기 않았던거지.


전화 통화를 또 몇시간 째 하다가 학교를 가야해서 끊어야 된다고 했어.

그랬더니 자기가 오늘 동문회 모임이 우리집 근처에 있다는거야.

동문회 끝나고 만나러 가도 되겠냐고.

그래서 “동문회요? 한국에서 대학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했더니

자기 대학은 세계 어디에나 동문회가 아마 있을꺼래.

사이즈 차이지.


암튼 알았다고 하고 학교를 다녀왔는데 8-9시까지 연락이 없어.

아… 동문회에서 술 마시고 뻗었나보다 하고

친구랑 약속 잡아 나가려는데 전화가 온거야.


동문회에서 자기가 막내라 빠져 나오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고 미안하다고

근데…

전화기 너머로 뛰었는지 숨이 찬 호흡이

갑자기 너무 이쁘네?


알았다고 하고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야, 나 지금 남자 만나러 가야겠드아!” 하고

만나러 집 앞 카페로 향했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숨 쉴 때마다 약하게 풍기던 소주 내음.

자기 학교는 선배가 주면  마셔야 해서 좀 마셨다고 했어.

하지만 흐트러지지 않았던 발음과 말의 논리와 내용.


술 취한 건 질색 팔색하지만,

취했으나 자기 관리가 완벽한건 또…

반전 매력, 너무 섹시하잖아.

나중에 물어보니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정신줄을 붙잡았다고.  

너무 보구 싶은데

그 날 보자고 하고 펑크 내면

영영 끝이겠지 생각에

동문회를 빠져 나오고 술 깨려고 커피를 들이 붓고

메트로 스테이션에서 우리집 앞까지 뛰어 왔었데.


그렇게 그 날도 새벽 늦게까지 얘기가 이어졌고,

우리는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도..

그리고 오늘까지 매일 붙어 있어.  


그리고 매일 매일  처음 만난 날 만큼 재미있어.


epilogue


요즘에도 둘이 저녁에 야식을 차려 놓고 와인을 마시면서

가아끔은 우리 만난 얘기를 하면서

만나고 난 후에 서로에 대한 느낌이 어땠었는지

어떤 어떤 순간의 비하인드 상황이 어땠는지  물어보고 그러는데,


우리가 만나기까지 비행기가 연착이 되고

잃어버렸던 쪽지가 발견이 되고

소개시켜준 언니의 전화기가 고장이 나고,

전화기를 주기로 한 약속시간이 꼬이고 했던

그 무수히 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그와 내가 인연을 맺고

지금 같이 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남편을 말을 빌리자면

무신론자인 자기가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유일한 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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