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 民

군중이라는 생물

by 갈휘연

어쩌면 대중도 진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 존재해 왔다.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그 힘의 격차는 어마무시했다.

피지배계급은 노예, 농노, 평민 등으로

공자가 “民”이라 불렀던, 우매하고 어리석은,

많이 배우고 善이 뭔지 아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人”이 도와주어 통제하며 깨우쳐주어야 하는 존재였으니

人, 즉, 지배층에게 착취를 당해도 심지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뭐라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평범한 시민의 버스비 2000원 절도는 징역을 살 일이지만

유명 정치인의 몇십억 횡령이나 부당이득은 증거불충분, 내지는 집행유예등으로 빠져나가기 일쑤.

그것은 아마도 기득권이 스스로 속해 있는 “가진 자”들은 人, 그리고 가지지 못한 이들은 民으로 달리 취급해서가 아닐까.


힘없던 역사에서 대중의 “꿈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종종 혁명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실패하면 “민란”이라는 혹독한 대가로 이정표를 찍으며 느리지만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법치-복지를 이뤄낸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스스로의 권리주장에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대중을 기득권보다 하급 사회계급이라고 공공연하게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태초에 아미노산 조각들이 어떤 기적적인 과정을 거쳐 단세포가 되어 생명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진화를 거듭해 인간에 이르렀듯이 지배층에게 핍박받고 착취당하며 파리 목숨 취급당하던 하찮았던 대중이 세상에 들리는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진화를 거듭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중이 목소리를 키우는 방향으로의 진화.

결국 평등을 일궈내는 방향으로 “대중”이라는 생물은 계속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재화는 무한하지 않다.

결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나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대중이 진화하는 그 방향이 다다르고자 하는 이상향에 이르는 게 가능할까?

무한이 가까워지지만 1/x가 0에 절대로 이를 수 없는 것처럼 어쩌면 불가능한 건 아닐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