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자의 권리

이상한 애

by 갈휘연

할머니는 아들 넷을 생산하신 위풍당당 종갓집 맏며느리셨다. 며느리 넷을 거느리시고 당시 크리스천 3대째로 나름의 성평등을 할아버지께 때때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이루셨다.


하지만 그뿐.

온갖 집안일은 할머니와 며느리 넷의 차지였다

명절이면 며느리들은 할머니의 지휘 아래 거의 노예 수준으로 명절을 견뎌야 했다.

명절 이틀 전부터 본가로 소환이 되어 마치 단체손님 전문 음식점인 양 국은 곰솥 사이즈 몇 통에 나물은 종류별로 큰 다라 한가득씩을 해내야 했다. 전도 종류별로 하루 종일 부쳐 큰 광주리에 산처럼 쌓아 놓았다.

종갓집이었으니 명절 전날 점심즈음부터 당일 점심까지 오고 가는 손님들의 상을 차리고 치우는 것은 응당 며느리 넷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명절인사를 오신 작은할아버지들과 반주를 하시며 말씀을 나누시고 큰아빠와 아빠, 그리고 작은 아빠들도 따로 작은 술상을 받아 TV를 보면서 명절을 만끽했다.


당시 어린 내 눈에 그게 뭐가 잘못됐다거나 분연히 일어나 불평등한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내 피부에 가장 와닿은, 받아들일 수 없이 가장 킹 받는 건 식사자리였다.


100명이 넘는 손님을 치르고 명절 다음날 점심식사는 안방과 거실에 따로 차려졌는데 안방에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포함한 아들 넷 그리고 큰아빠 큰 아들인 장손 사촌 오빠 자리가 마련되고 나전칠기 교자상에 가장 좋은 식기와 정성이 가득 담긴 상차림이 차려 올려졌다.

반면 거실엔 할머니와 며느리들 그리고 장손 외 손주 손녀가 식사를 할 아무 그릇에 구색 없이 수북히만 싸여있던 부서진 전, 모양새를 전혀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뜬 국 등이 오른 밥상이 차려졌다.


불편했다.

난 그게 자각이 된 후부터는 절대로 거실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엄마나 큰엄마 작은엄마가 겪는 부조리까지 생각이 닿아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냥 직관적으로 내가 여자애라는 이유로, 혹은 장손이 아니라는 이유로 막차린 상에 차려진 음식이 먹기 싫었다.

그저 나도 예쁘게 차려진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네 형제 중 꽤 잘 나가고 말에 무게도 있었던 아빠를 뒷배로 누가 거실에 나가서 먹으라고 하면

"난 저기서 먹을 거야!!!" 하고 악을 썼다.


할머니는 명절에 큰 소리 나게 하지 말라시며

"그냥 여기서 먹으라고 해. 희한해 암튼!"

하시고 나를 그냥 안방에 두셨다.

그 지긋지긋한, 연중 행사로 선택권없이 노예로 전락하는 명절이 너무 싫었던 엄마는 끝내 이민을 결심했고

이민을 오기 전까지 명절에 나는 안방에서 식사를 했다.


어렸을 때 알았다.

없는 자에게 권리는 쟁취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