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사건과 광화문의 빙구들

그들은 시간 여행자들인가

by 갈휘연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프랑스에서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이후 에밀 졸라의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로 대중적 관심이 폭발하며 진실이 밝혀졌고, 프랑스 사회는 군과 정부의 은폐 시도, 반유대주의 문제로 깊이 분열되었다.


이 일련의 사건의 모양새는 요즘 한국의 윤석열 사태, 미국의 트럼프 사태를 떠받치고 있는 혐오 선동 집단, a.k.a 극우(나는 그들을 빙구라고 부른다)와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그들에게는 혐오하는 대상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의 배경에는 반유대주의가 있었고, 윤석열 계엄 사태에는 뒤틀린 반공, 혐중 정서가 있었다.

또한 지금 현재진행중인 트럼프 사태는 넘사벽 국방력을 위시하여 주변국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백인 우월주의, 미국 우선주의가 뒷받침 되고 있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야만 ‘내’가 정당해진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군부는 유대인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있었음에도, 오히려 증거를 조작하고, 그것을 고발한 사람(에밀 졸라)을 탄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군 내부 부패와 무능을 감추기 위해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윤석열 지지층, 광화문 극우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조국일가와 이재명, 그 가족을 악마화로 희생양을 삼았다.

그 후 세를 더하기위해 돈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극우 유튜버를 이용해 ‘좌파 빨갱이’, ‘중국몽’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박탈감과 분노를 투사한다.

트럼프 지지층이 이민자나 흑인, 여성, 진보 엘리트를 “진짜 미국을 망친 장본인”으로 설정하는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다.


무너진 자존감은 늘 ‘악한 타자’를 만들어야 회복된다.


왜 빙구들은 늘 지식인을 적대하는가?

드레퓌스 사건 당시, 에밀 졸라를 위시한 지식인들이 “진실”을 외치자 군과 반유대 보수언론은 그들을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로 몰았다.

현재 한국의 조중동, 미국의 Fox News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 광화문 광장의 극우 노인들은 “뉴스를 믿지 마라, 유튜브를 봐라”, “진보 언론은 다 가짜 뉴스”라고 외친다.

미국에서도 Fox News는 지식인층을 “엘리트주의자들”, “워싱턴의 부패한 엘리트 정치 카르텔”로 민주당을 프레이밍하며 불신을 키운다.


왜?

팩트는 지식인에 의해 밝혀지고, 밝혀진 팩트는 ‘빙구’의 내러티브를 무너뜨리기 때문.

팩트는 감정적 위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는 진실보다 믿음이 편하다.


맞다.

빙구들은 진실과 실체보다 마음의 위안과 감정의 안정이 더 중요한 집단이다.


하지만 왜 꼭 약자를 타겟으로 혐오하는가?

일단 쉬워서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혐오하고 조롱할 때 느끼는 일시적인 우월감은 ‘자기비하로 인한 고통’을 덮는 가장 쉬운 약이다.


“불법체류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페미가 남자 망쳤다”, “이주민이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은 모두, 사실 문제를 일으킨 대기업과 정치인등을 포함한 권력층을 두고 감히 탓하지 못하니, 상대적으로 ‘말 안 해도 되는’ 약자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


자기보다 못한 대상이 있어야, 내가 겨우 나로서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약자는 이들의 면죄부이자 자기보호용 샌드백이다.


결국은 “어쩔 낮은 자존감?”


왜 빙구들은 보통 못배우고 못가진 노년층이 다수인가?

나이든 층일수록 디지털 리터러시가 낮고, 언론 소비가 편향되기 쉽다.

또한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정보 판단의 객관성과 독립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에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실패 원인을 “구조적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더 쉬운 사고 프로세스 이기 때문일 것.


어쩌면 더 큰 문제는 빙구들의 단순 무식함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지고 방치된 존재라는 점이다.

“정신 차려라”는 말보다 “그들도 피해자다”라는 시선이 필요하지만, 그걸 국힘은 의도적으로 자극하고 분열 도구로 이용한다.


그렇게 그들이 종종 다시 나타난다.

면역이 낮아지면 여지없이 입술에 수포를 만드는 헤스페스 바이러스처럼.

드레퓌스 사건 당시 눈과 귀를 막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드레퓌스를 죽이라고 구호를 외쳤던 그들이 오늘의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들고 혐오를 외치는 그들로 타임슬립을 해서 다시 나타났다.


다만 시대가 달라 ‘유대인’ 대신 ‘좌파 빨갱이’를,

‘반유대 신문’ 대신 ‘극우 유튜브’를 붙들었을 뿐.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