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아질 사유리들
몇 해 전에 사유리라는 일본인 방송인이 유럽인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과 출산을 했다.
결혼하지 않은 자발적 비혼모인 셈.
그녀는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가지고 싶어 그런 결정을 했다고 했다.
처음 그 기사를 접했을 때 그녀의 상황에 할 수 있는 매우 용감하고 영리한 선택이 아닐 수 없구나 싶었다.
그녀에게는 출산할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이 있었고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일본에서 시술을 한다면 정자 기증 등으로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꽤 알려진 방송인으로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안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간혹 “나중에 애가 커서 ‘왜 나는 아빠가 없어요?’하면 어쩔 거냐“ 본인들이 키워 줄 것도 아닌 애 걱정을 하며 비난을 하는 여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유리 이슈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대는 이들은 남성들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비난은 사유리가 “좋은 것만 취하고 책임은 안 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책임?
무슨 책임?
책임이란 누군가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수반되는 걸 처리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애를 낳아 잘 키우겠다는 사유리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게 뭐란 말인가.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면 설마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게 삶의 ”책임“이란 말인 건가?
더 적나라하게 까발려 얘기하자면
그 많은 남자들의 악플은 내 눈엔
“어디 감히 남자 없이 여자가 애를 낳아? “로 들렸다.
더 깊은 정직한 속내는
‘아이를 가지는 건 남자와의 결혼을 전제로, 그 결혼 안에서 남성에게 ‘잠자리’라는 대가를 제공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보상이야. 근데 그 보상만 빼먹고 대가는 치르지 않겠다고?’ 가 아닐까.
그들의 논리는 출산과 육아를 여성의 ‘욕망’이나 ‘의지’의 결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의 ‘허가된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가정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니까 정자는 ‘제공’이 아니라 ‘교환’되어야 하고,
그 교환의 조건은 결혼, 가정 안에서의 여성의 헌신, 그리고 종속이어야 한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그 시선 안에서 여성이 임신을 남성의 부재 속에서 “선택”하는 건 ‘자율’이 아니라 ‘무단침입’이다.
마치 불법 다운로드라도 한 것처럼 여기고, “정당한 절차 없이 리워드만 챙기냐”며 분노하는 것.
그 분노는 고결한 사회윤리나 도덕적이라기보다 소유욕과 권력욕이다.
여자들이 본인이 원해서 본인몸으로 아이를 갖는 것조차도 남자의 참여와 통제를 거쳐야 한다는 해묵은 사고,
여성이 임신과 출산은 남성의 간섭 없이 하면 정상이 아니라는 사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누가 정한 순서인가?
왜 여성은 출산 능력이 있음에도 사랑 없이, 결혼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이
여성에게 ‘독자적으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것이 자기들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에 어쩌면 공포와 상실감을 넘어 분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꺼내고,
‘애 아빠 없이 아이가 불쌍하다’는 위선적 감성을 휘두르고,
결국 비천한 속내를 비칠 수 없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책임감이 없어.”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제2의, 3의 사유리들은,
그 ‘없어도 되는 존재’들이 ‘있어야만 한다’는 허상을 얼마나 쥐고 흔들고 있는지 안다.
그리고 그 해묵은 가부장적인 사고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출생률은 더 떨어질 것이고
사유리들은 점점 더 많이 그 허상을 빗겨 지나쳐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