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생활의 거름
결혼하기 전 크게 싸운 일이 있었다.
엄빠의 부부싸움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남자친구는 만들어도 결혼같은 건 안하고 혼자 살겠다고 하다가
유니콘같은 사람을 만나 홀리듯 하게 된 결혼이었는데
결혼 전 사소한 일로 싸우다가 그의 언성이 올라가는 걸 보고 정신이 번쩍 났었다.
'아, 내가 잊고 있었구나."
목소리 데시벨이 좀 올라갔다고 정색을 하고 "이 결혼 무효일세"를 시전하는 나에게 깜짝 놀란 유니콘이 몇시간에 걸쳐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꺼라는 약속을 수십번을 하고나서야 무마가 됐다.
내가 언성이 높아지는 것에 예민한 것은 그 시작의 안좋은 끝을 엄빠의 결혼생활에서 너무 자주 목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대강 싸움은 늘 파국이었다.
싸움의 원인은 늘 친할머니.
할머니를 포기 할 수 없었던 아빠와 주도권을 포기 할 수 없었던 엄마의 싸움은 늘 서로의 바닥을 쳤다.
상대의 멘탈을 최대한 부숴버리기 위한 하지 말아햐 할 말로 화살을 정교하게 만들어 서로를 향에 끊임없이 쏴댔다.
바닥을 치는 싸움엔 늘 고성이 오갔다.
어린 나와 내 동생은 그렇게도 자주 있던 싸움이었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맥길로 대학을 가면서 독립을 했을 때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더이상 그 싸움을 안봐도 된다."
지금와서 보면 엄빠의 싸움은 보통사람의 보통 부부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리에 예민하고 단어에 민감한 내게는 그건 서로 말로 죽여보겠다고 하는 난장싸움이었다.
그 싸움에서 나던 비슷한 데시벨의 소리를 남편이 될 사람에게서 듣고 나니 그 때의 불안, 두려움이 각성이 됐던 것이다.
어쨋거나 결혼을 했다.
결혼이라는 걸 단순화 시키자면 언제라도 이별을 해도 법적 문제가 없는 "남자친구"가 "배우자" 즉 법적으로 서로를 책임질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 됐다는 것.
그렇게 남자친구와 배우자는 다르다.
고로 결혼 후 내가 유니콘을 대하는 기조도 바뀌었다.
'내 사람이다.
평생을 함께할 내 사람이다.
그의 불행은 나에게도 불행이다.
깨뜨리지 말자.
한번 깨뜨리면 되돌릴 수 없다.'
희망이 전혀 없어 아예 깰 게 아니라면 부부싸움은 승패를 가르는 대결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부부싸움은 문제를 해결하는, 예의와 존중을 밑바탕으로 하는 토의 혹은 토론이어야 했다.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이 만든 "집"에 생긴 문제를 "같이" 해결하기 위해 하는 치열한 토론.
거기서 같은 팀멤버를 나랑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를 입혀 불행하게 만들거나 부숴버리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
행복한 결혼생활은 끊임없는 관리고 존중이 밑바탕이 되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내 부모의 결혼생활을 타산지석 삼아
내 결혼에 거름으로 뿌렸다.
어쩌면 내 행복한 결혼생활의 공은 바로 그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