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지랄을 막기 위한 뻘생각
요즘 가끔 말썽인 우리 집 에스프레소 머신은 한 천불쯤 하는 반자동이다.
사기 전에는 핸드드립을 해서 커피를 마셨는데 어느샌가 좀 귀찮아지기도, 가끔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유니콘이 아쉬워하기도 해서 구입하기로 했었다.
물론 살 당시에도 어마무시한 리서치가 선행됐다.
완전자동은 맛을 너무 희생해야 했고, 그렇다고 완전수동은 관리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한 그라인더를 따로 사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일체형으로 찾았다.
당시 유행하던 브뤠벨꺼는 유행이라 따라 하기 싫었고
살짝 손이 더 많이 간다는 디롱기 스페셜리스타를 샀다.
물론 프레임도 유행이었던 크롬으로 사지 않고 쨍~한 빨강으로 샀다.
Rotisserie가 있는 에어프라이어를 사기 전까지
동네 로컬 커피로스터에서 커피빈을 사다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 불현듯 직접 볶아 먹어볼까 하고
생두를 이것저것 오더해 로스팅을 직접 해서 먹기 시작했다.
보통 볶은 지 1-2주 되도록 주기를 맞춰서 커피를 내리면 크레마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늘 문득 커피를 볶다가,
'커피맛에 본질은 커피빈이다. 커피머신이 커피 맛에 주는 차이는 커피빈에 비해 그지 않다.'
는 생각이 스치며 nature vs. nurture까지 생각이 닿았다.
커피맛의 변수는 커피빈의 퀄리티, 로스팅 스킬, 그리고 커피를 추출하는 머신.
거기에 대응하는 건, 사람의 타고난 능력, 어떻게 자라고 교육되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이 성인으로서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가 쯤일 것.
커피맛의 본질을 커피빈의 퀄리티와 그것을 어떻게 볶는가로 규정한다면 나는 nature 쪽에 더 기운 사람인가? 대학 때만 해도 나는 nurture의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한 개인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이뤄지는 교육 역시 넓게 보면 nurture의 일부니까,
내가 완전히 nature 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찝찝하다.
그 논리가 찝찝의 지점은 타고난 퀄리티의 커피빈, nature,와 그걸 얼마나 잘 볶았는지, 그리고 볶은 지 얼마나 된 콩인지,nurture,까지 이미 이 둘은 커피라는 대상 안에 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커피의 본질은 커피빈’이라고 말할 때, 그건 단순한 타고남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미 어떻게 다뤄졌고, 얼마나 숙성되었는지까지 포함된 결과물인 거다.
내 논리가 삐끗한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렇게 커피빈에게 커피머신은 인간에게 "사회 시스템"에 가까운 존재다.
포텐셜을 마음껏 풀어내 줄 바탕.
하지만 둘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커피머신이 커피 맛에 주는 영향은, 사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큼은 아니다.
인간은, 좋은 유전자와 성장 과정을 거쳤다 해도 사회가 너무 왜곡돼 있다면 그 잠재력을 발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성장 과정 자체도 사회의 안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어떤 커피는,
설령 머신이 좀 엉성하더라도
좋은 콩, 좋은 로스팅, 적절한 숙성이 있으면 꽤 괜찮은 맛을 낼 수 있다.
고로, 결론적으로다가
난 커피머신을 바꾸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