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無기대의 역설
나는 세상에, 사람에 큰 기대가 없다.
그렇다고 큰 사건사고가 있었다거나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거나 하는 이벤트가 있었던 건 아니다.
40년 넘게 나름의 인간 사회 면면의 성찰 후
언젠가부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어차피 호모 사피엔스도 본질적으로 싸구려 동물일 뿐이야”라는 생각을 뒤집을 일이 없어서라면 없어서겠다.
인간의 사회 시스템도 다윈의 진화론을 그대로 따랐다.
다윈은 말했다.
진화는 더 나은 쪽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은 버젼이 남은 것뿐이라고.
본질적으로 언 발에 오줌누기식으로 진화/발전해 온,
그저 어떤 천지개벽 이벤트를 맞아
인지혁명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발돋움한 호모 사피엔스,
그리고 그들이 치열했지만 엉성하기 짝이없게 만든 시스템에
별 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내 평안과 행복이 이토록 유지되는 게 아닐까 한다.
나는 늘 생각이 많고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 와중 그 많은 생각들을 풀어내는 데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에 글을 즐겨 쓴다.
물론 내 글을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는 것은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다.
글을 써서 인터넷 플렛폼에 올리는 걸 즐겨 하면서 신경을 전혀 1도 안쓴다면 거짓말일 것.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like를 눌러주고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댓글을 보면 므흣하고 기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읽어주길 바래서,
대대적인 공감을 얻어 독자의 생각을 바꾸거나 행동이 변하는 걸 기대해는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가끔 리마인드 한다.
인기나 팔로어 수를 늘리는 그런 게 목적이었다면,
내 글은 아마 지금의, 딱 내가 바라는 이 결의 이 생명력을 갖지 못했을 거라고 꽤 강하게 확신한다.
예전에는 그게 좀 냉소적인 성향인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이게 나의 기본값이라는 걸 안다.
다행히도 기대가 없는 만큼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도 내가 원하는 소리를 떠들어도 사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의 능력은 있어서
이렇게 내 쪼대로 살아도 무방함에 감사하다.
나는 글을 미래의 나에게 쓴다.
몇 달 뒤, 몇 년 뒤,
어쩌다 오늘의 글을 다시 읽은 내가
“아, 과거의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리마인드 한 조각이라면 족하다.
그 하루가 별 거 없는 날이었다 해도,
그 기록 덕분에 생명력 한 방울 더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목표는 달성한 것.
사람들이 ‘기억보다 기록’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나는 기록보다 느낌의 결을 남기고 싶다.
당시의 나의 온도, 리듬, 사고의 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어쩌면 오늘을 잊었을 미래의 나에게
“네가 잊어버린 이 하루도 이렇게 반짝렸다” 지금의 나를 되새겨주는 조각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 밖의 존재에 기대하지 않고 글을 쓴다.
공감을 기대하지 않고,
팔로어나 조회수를 기대하지 않고,
기억되지 않기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으니
꾸준히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언젠가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고
“그때도 여전했구나. “ 안심을 하는 하루가 되길.
그걸로 내 글의 단촐한 존재 이유는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