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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Jan 22. 2023

사이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이면 빼놓지 않고 꼭 챙겼던 것이 삶은 달걀과 사이다였다. 퍽퍽한 계란은 넘길 때마다 목이 콱 막히기 일쑤였다. 뽀골뽀골 수정처럼 올라오는 기포의 힘으로 목 아래까지 쑥 내려주니 어찌 시원하지 않겠는가. 독특한 향과 함께 목을 타고 내려가는 내내 묘한 자극이 아찔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모 시장의 ‘사이다 발언’이 연일 화제였던 때가 있었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사람들은 제 가슴을 쳤다. 답답한 국민들의 속내를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대변해 주었기에 생겨난 말이리라. 하지만 사이다는 내게 그다지 시원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사이다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쿡’하고 막히는 것이다.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서울에 갈 일이 있어 함께 고속도로를 탔다. 휴게소가 가까워지자 아이는 목이 마르다며 잠시 쉬었다 가잔다. 어려서부터 편식이 심했던 아이는 사이다나 콜라 같은 음료수를 늘 입에 달고 다녔으니 오늘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아들 녀석은 음료수를 손에 넣고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차로 돌아왔다. 음료수 두 개가 먼저 눈에 들자, 아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나면 되지 넌 꼭 그걸 두 개씩이나 사야 되니? 무슨 음료수 욕심이 그렇게 많아?”


날카로운 나의 반응에 순간 아이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의기소침해진 아이를 보며 나도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차 안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도망치듯 아무 말 없이 출발했다. 


그렇게 어정쩡한 분위기로 몇 분을 달렸을까? 아이가 슬며시 음료수 하나를 내려놓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하나는 엄마 건데……” 한다. 뜨끔했다.

사실 나는 음료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음료수를 먹을 생각은 아예 없었던 것인데 아들 녀석은 그래도 엄마랑 동행하는 게 좋았던지 제 것과 엄마 것 두 개를 샀던 것이다.

“엄마가 언제 음료수 먹는 거 봤어?”

“…….”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또 가관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게 아니라고 다시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고 점점 난처해졌다. 아무리 어미지만 아들 앞에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 안의 공간은 왜 이리 좁은지 우리의 숨소리만이 가득 찬 듯했다. 민망함을 들킬세라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쩌면 어미가 돼서 그깟 음료수가 뭐라고…….


풀이 죽은 아이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왜 그다지도 성급하게 감정을 내뱉었을까? 왜 그랬을까. 아이는 이미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엄마였다.


하루하루를 등 떠밀리듯 바쁘게 생활하면서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코앞에 보이는 일과에만 허덕였다. 어려서부터 엄마 없는 빈집에서 아이가 느꼈을 공허함과 외로움을 생각하기보다 내 아이니까 으레 잘 자라주려니 했다. 아이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는커녕 훈육이라는 핑계로 야단치며 잔소리하는 데에 익숙한 엄마였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대신 보냈다는데 대리 신은 실수도 하는 모양이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뒤죽박죽된 채 슬며시 아들을 보았다. 눈을 감고 있다. 저도 많이 속이 상했나 보다. 왜 안 그럴까. 슬쩍 아이의 허벅지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아이가 움찔하며 깬다.

“……”


나의 사과는 서툴기 짝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왜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할까? 아이 앞이라서 잘못을 인정하는 데 더욱 인색했다. 남에게는, 윗사람에게는 죄송하단 말을 잘도 하면서 정작 내 아이에게는 사과할 용기가 없었다. 응어리를 풀어줄 그 한마디가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을.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그때 생각만 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그래서인지 사이다는 어설픈 모정을 나무라듯 언제나 나의 목을 톡 쏜다. 아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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