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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Sep 16. 2023

별마루 일기

길냥이 모셔오기 2023. 9. 16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이건 남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다. 지금 내 앞에서 글루밍을 하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바라보며 왠지 그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랄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3년 전의 일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살던 그 해 여름 내내 나는 문을 열어놓은 채로 잠을 자곤 했다. 자정 즈음해서 잠자리에 들라치면 어디선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그만 하라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해 여름은 잠 못 이루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급기야는 동물보호센터에 연락하여 그들이 번식을 막고자 했다. 

그다음 해 긴 장마로 인해 배를 굶주린 쥐가 하수구 관을 통해 집으로 난입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그제서야 고양이를 다시 찾게 되었지만 그때는 고양이가 내 눈에 전혀 띄지 않았다.

쥐 사건이 일어났던 그해 가을에 지금 사는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꽃과 풀과 나무와 새들 그리고 얼마간의 텃밭 작물로 나는 자연을 만끽하며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즐거운 나날이었다. 애써 가꾼 농작물을 갉아먹는 벌레에게도 그들의 몫을 남겨줄 만큼 관대해지고 있었다. 하늘도 흙도 바람도 모두가 내게는 선생임을 마음으로 읽으며 낯선 환경에서 한 해를 그렇게 무사히 보내던 참이었다.

다음 해 11월 말쯤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등에 쪼이며 쪼그리고 앉아, 말려놓은 서리태를 손질하고 있었다. 허리를 펴려던 찰나 사선으로 뒤쪽에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커다란 뱀이 똬리를 틀고 볕을 쬐고 있었다. 나와의 거리는 불과 30cm 정도. 기겁을 한 나는 119를 불렀으나 뱀은 이미 제 굴로 사라진 후여서 소용이 없었다. 그러고도 집 주변에서 몇 번이나 뱀을 볼 수 있었다.

이웃에서는 내가 약을 안 쳐서 뱀이 온다는 것이었고 나 때문에 이웃집에도 뱀이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약을 치고 싶지는 않았다. 뱀을 막는 이런저런 여러가지 방법은 나와 있으나 딱히 마땅한 것이 없었다. 고민 끝에 길냥이를 모셔오기로 했다. 원래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뱀과 한 집에서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사올 때부터 제가 주인인 양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우리 집 마당을 유유히 가로질러 가던 길냥이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 밥그릇을 준비하고 사료를 사왔다. 고양이가 오든 안 오든 사료를 놓았더니 어느 틈에 와서 먹고는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실에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너무 귀여워서 달려나갔더니 쏜살같이 도망을 간다. 나는 매일같이 사료 주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들을 멀리서만 바라보아야 했다. 

날이 갈수록 어미와 새끼 고양이들은 우리 집 마당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제는 내가 가까이 가도 뒷걸음질만 할 뿐 멀리 도망가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길냥이 모셔오기는 대성공이다.     

그러고 보니 모기와 쥐는 뱀이, 뱀은 고양이가... 저마다의 먹이 사슬을 잘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을 인간이 중간에 끼어 애써 없애려 했던 것이 얼마나 자연에 대한 무례인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뱀은 보이지 않는다. 인적이 없는, 고양이의 숨결이 미치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직 귀여운 새끼고양이를 내가 쓰다듬으며 예뻐할 수는 없지만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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