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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자 Oct 05. 2023

맏이 34. 금성천 전투

1952~1953

  

금성천 전투는 휴전을 앞두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던 곳이다. 금성 평야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19연대가 방어하고 있던 이른바 A고지, B고지로 일컫는 감제고지(瞰制高地)를 사수(死守)하는 진지에 있었다. 낮에는 국군이 야간에는 중공군이 뺏고 빼앗기는 그런 중요한 고지였다. 몇 달 동안 한 진지를 서로 차지하려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이 고지를 탈취당하면 금성천 유역 평야는 물론 우리의 전체 방어선이 후퇴하게 되고 국군 전방의 방어선 균형이 깨어져 불리한 형세로 되기 때문에 각 부대는 그야말로 많은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여 사수했다.

당시 백마고지 김화고지 등 중부와 서부에서의 혈전은 지금까지 그 기록이 말하듯 어느 전선을 막론하고 소홀히 할 진지는 없었다. 중공군은 집요하게 사력을 다하여 밤에는 틀림없이 공격을 해 왔다. 대로는 적에게 점령당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때는 아군은 미군 공군 포대의 지원을 얻어 낮에 일제 공격을 하여 다시 탈환하곤 했다.

이 고지는 우리가 진을 치고 있는 주저항선에서 바로 직선으로 보이는 고지여서 낮에 우리 보병이 공군과 포사격의 지원을 받아 낮에 오르는 그 모습은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밤에 탈취한 중공군은 그곳을 사수하느라 수류탄을 던지며 이 진지, 저 진지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일 때는 가슴을 조이며 우리 보병의 건투를 빌었다. A고지, B고지 그리고 돌고지는 그 정상이 좁고 그동안의 포사격에 나무는 하나도 없어 그야말로 먼지로 쌓인 그 산은 공격에도 어렵고 방어에도 어려운 그런 산이었다.

벌거숭이가 된 산에는 시체만 자꾸 쌓여져 결사적으로 정상에 이른 보병과 중공군 사이에 백병전까지 벌어지는 모습이 개미의 싸움같이 보였다. 이 전투에 보병은 그야말로 수없이 투입되고 어제 훈련을 마치고 오늘 산에 올라 그날로 전사한 장병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무시무시한 고지에 드디어 우리 중대에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때 나는 공병대대 2중대장이었다. 명령을 하달할 때 대원들은 침묵에 잠기고 겁에 질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같이 산에 오르기로 했다. 우리의 임무는 그동안 피아(彼我)의 포격으로 박살 난 고지 주변에 지뢰를 다시 매설하여 밤의 중공군 습격에 대비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각자 2개씩의 대인 지뢰를 가지고 3소대 병사 20명이 모두 60개의 지뢰를 매설하는 것이다. 매설에 관한 자세한 것은 고지의 소대장과 협의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침 일찍 고지로 향했다.

그 고지는 A고지였다. 그 고지는 이미 아군이 5일간을 계속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공고한 진지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주저항선에서 그 고지까지는 직선거리 약 1Km의 거리다. 그 공간은 언제나 중공군의 박격포탄이 작열했다. 우리는 각자의 거리를 두고 노무자 10여 명 (주먹밥 운반)과 같이 고지로 향했다. 중대장과 동행하는 것이 대원들로서는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나 그래도 각자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서로 주고받는 말도 없었다.

A 고지의 후사면까지 아무 일 없이 도착하여 보니 보병들과 밥과 실탄을 운반하는 노무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 고지 아래는 안전지대로 모두 이곳에서 쉬기도 한다. 후사면이라 직격탄의 걱정도, A 고지의 높이로 보아 박격포의 걱정도 없는 곳이다.

우리는 한 숨 쉬었다가 고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오르다 보니 나무도 없고 모두 바위산이다. 한때 중공군에게 탈취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공격한 공중 투하나 아군 포격으로 정상에 오를수록 자연은 완전히 황폐되고 있었다. 그리고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이런 고지를 중공군에 탈취 당했을 때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이 고지를 기어오르며 수류탄과 소총 등 사격을 무릅쓰고 정상을 탈환한 전우들의 고생을 새삼 느끼며 그때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었다.     

정상에 오르고 나니 생각보다 좁아 대원들은 후사면에 적당히 쉬도록 하고 보병 소대장을 만났다. 소대장은 우리를 환영하며 지뢰의 매설 지점을 가르쳐 준다. 구세주를 만난 듯 진지 주위에 이중으로 가설해 달라는 주문에 나는 내심 놀랬다. 이 험한 산에 이중으로 가설하자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지와 같이 원칙대로 할 수 없거니와 대원이 동시에 작업할 수도 없다. 해서 나는 속으로 판단했다. 임기응변으로 각자의 책임 위치를 미리 지정해주고 한 사람씩 고지 아래로 내려보낸다. 매설이 끝나면 다음 대원에게 손으로 신호케 하여 그 위치에서 좌측으로 매설하기 사작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마음먹고 작업을 시작했다.     

지뢰매설 장소는 적에 노출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각자의 행동이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포복으로 기어 내려가 각자 두 개를 매설하고 이어 산 주위에 모두 매설했다. 매설에 나서는 대원에게 중대장으로서 일일이 눈짓으로 격려했다. “잘 해라.” 하고. 모두들 용감했다.     

그때 적의 포탄이 고지 능선에 명중했다. 그곳은 보병의 개인호였는데 그 속에 있던 보병은 전사했다. 포탄은 한동안 정상 부근에 떨어졌으나 더 이상의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보병 소대장은 우리에게 욕을 퍼부었다. 음폐와 차폐가 안돼 적에게 발견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뢰매설을 끝마치고 돌아올려고 하는데 보병 소대장이 하산할 때 정상 부근에 쌓여 있는 버려진 무기와 중공군 노획 무기를 가지고 내려가라고 한다. 많은 수의 무기를 각자 나누어 내려오니 막 도착한 보병 신병과 노무자들이 주먹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가지고 온 주먹밥을 먹었다. 점심밥을 저녁에 먹었으니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우리는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부대로 돌아왔다. 대대장이 OP에서 우리의 작업을 보았다고 하면서 칭찬 해주어 그날 저녁 우리들은 나름대로 전공담에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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