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상 말이 언어(言語)이고, 언어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어학적 관점에서 말(Speech)과 언어(Language)는 밀접하지만 서로 약간 다른 개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말 (Speech)은 언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물리적인 소리의 표현이다. 즉 발성 기관(입술, 혀, 성대 등)을 통해 공기를 진동시켜 전달하는 행위이다. 반면에 언어 (Language)는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추상적인 규칙과 기호의 체계이다. 문자, 문법, 단어, 의미 등이 포함되며 사회적 약속에 기반한다. 언어 없는 말 즉, 문법적 체계(언어)가 없이 입으로 내뱉는 소리는 의미를 전달할 수 없어서 소음이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언어가 존재해 왔으나 점차 소멸되고, 지금은 약 6~7,000개 정도의 언어만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중에도 43% 정도의 언어가 날마다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데, 통계적으로 40일마다 1개씩 사라진다.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23개 정도의 언어로 말하고 있기 때문인데, 점점 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언어들을 기록하는 도구인 문자는 약 50개 정도라고 한다. 그중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인구는 15위, 전체 사용인구로는 19위 정도라니 대단한 힘이다.
말과 언어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품격에 따라 품격이 부여될 수도 있다. 한 때 한자어(漢字語)는 고품격이고 한글이 저품격으로 취급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정겹고 고운 우리말이 많이 발굴되어 활용되면서 그런 관념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도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 보다 격식과 전통을 고수하며 딱딱한 한자어를 고집하는 분야도 많이 있다. 특히 법률 분야가 더한 곳이다. 물론 이미 한자어로 고착된 단어를 우리말로 대체할 수 없거나 풀이하자면 너무 길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가 없겠지만 아쉬운 상황이다. 영어의 경우도 이런 것이 많다. 우리말은 소의 고기를 쇠고기, 돼지의 고기를 돼지고기로 표현한다. 특별히 소나 돼지 신체의 부위를 가지고 표현한 경우만 고유한 명칭을 갖지만, 동물의 고기를 통칭하는 경우는 쇠고기·돼지고기·양고기·닭고기이다. 그런데 영어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동물의 명칭과 고기의 통칭이 다르다. 소(Cow)-쇠고기(Beef), 돼지(Pig)-돼지고기(Pork), 양(Sheep)-양고기(Mutton) 등이다. 영어는 왜 그럴까?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침공해 승리하여 영국을 지배하면서 상류층을 형성했다. 노르만족은 왕족, 귀족 등 지배 계층을 형성했고, 그들의 언어인 노르만 프랑스어는 '귀족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영국의 언어가 지배 계층(프랑스어)과 피지배 계층(영어)의 언어로 분리되면서, 정부, 법률, 군사, 요리 등 상류층 문화 관련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유입되었다. 말하자면 고급 품격의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의 한자어가 일정기간 동안 고급 품격의 언어로 자리 잡듯이. 300년간 상류층은 프랑스어를, 평민은 영어를 사용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는 자연스럽게 융합되기 시작했다. 영어는 수많은 프랑스어를 차용(借用) 흡수하면서 어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게르만어와 라틴어가 섞인 독특한 형태의 언어로 발전했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영어 어휘의 70%가 프랑스와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식재료 명칭은 당연히 요리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어가 고급스러운 영어로 변한 것이다. 쇠고기 영어(Beef)-불어(Bœuf), 돼지고기 영어(Pork)-불어(Porc), 양고기 영어(Mutton)-불어(Mouton)의 구조로 변화했다. 즉 피지배 하층민은 소(Cow)·돼지(Pig)·양(Sheep)을 사육하고, 지배 귀족층은 쇠고기(Beef)·돼지고기(Pork)·양고기(Mutton)를 식탁에서 즐겼나 보다.
한자어는 모두 고급어(高級語) 내지 고품격어(高品格語)이고, 한글은 대부분 저급어(低級語)로 인식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일전에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부·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자 상용화에 대하여 필자 금삿갓의 고향 선배인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과 대화중 이런 발언을 했단다. “제가 정말 제일 듣기 싫은 게 ‘저희 나라’라는 말”이라며, 또 “‘염두해 두고’(염두에 두고)도 그렇고, ‘대인배(大人輩)’라는 말도 이 ‘배(輩)’자가 너무 짜증이 난다. ‘쌍놈’이나 저잣거리 건달을 뜻한다. 왜 ‘대인’에 배(輩) 자를 붙이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너무 일상적으로 쓰여 아무도 지적을 안 한다”라고 했다. 필자 금삿갓이 보기에도 ‘저희 나라’는 틀린 말이다. 아나운서나 연예인 사회자 중 일부가 간혹 이런 실수를 한다. 겸손하게 표현하려면 자기 혼자만 낮추면 되지, 대한민국 전 국민이나 대한민국 자체를 낮출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輩) 자는 무리를 뜻하며,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다만 이 글자를 무뢰배(無賴輩)·폭력배(暴力輩)·시정잡배(市井雜輩) 등 부정적인 용어의 접미사로 써서 그런 느낌이 풍기는 것이지 모든 용어가 그렇지는 않다. 선배(先輩)·후배(後輩)·동년배(同年輩)·대인배(大人輩)가 왜 저잣거리의 건달을 뜻할 수 있겠는가? 그럼 명문학교에서 인재를 배출(輩出)한다고 할 때, 건달들을 쏟아내는 학교라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말과 언어는 그 자체에 품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즐겨 쓰는 사람의 인격에 따라 더 좌우될 것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