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한 해를 보내기 – 송년회 또는 망년회

by 금삿갓

며칠만 지나면 을사년(乙巳年)이 다하고 또 병오년(丙午年)이 다가온다. 최근에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현상으로 연말연시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송년회와 신년회는 우리 주변에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송년회라는 모임이 별도로 없었다. 단지 수세(守歲)라는 이름으로 섣달 그믐날에 집안을 청소하고 새해를 맞는데, 집안 여기저기에 불을 밝혀놓고,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운다. 물론 묵은세배(歲拜)라고 하여 부모님과 어른들에게 그믐날에도 세배를 드렸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 있었다. 우리에겐 망년(忘年)이란 용어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처음 거론되었다. 이것으로 망년(忘年)이란 용어의 유래(由來)를 찾을 수가 있는데, 용법이 한 해를 보내며 지난해를 잊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망년지교(忘年之交) 또는 망년지우(忘年之友)라는 의미로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뜻이 맞으면 나이를 잊고 벗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망년회(忘年會)라는 행사 모임이 들어와서 전 국민의 연말 행사로 정착했다. 1914년 12월 6일 자 부산일보에 ‘금요회 은행 망년회’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망년회’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는 것으로 보인다. 1929년 12월 1일 기사에는 ‘근년에 와서 망년회라는 이상야릇한 버릇이 생겼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 보아 망년회 또는 송년회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은 아니었다.

일본말인 망년회(忘年會, ぼうねんかい, 보넨카이)의 유래를 보면 ‘망년(忘年, ぼうねん, 보넨)이 아니라 ‘연망(年忘, としわすれ, 도시와스레)’에서 왔다. 이는 무로마찌시대(室町時代, 1336-1573)의 책인 <간문일기(看聞日記)>(1430년)에 나오는 말로 지금으로부터 6백 년 전 이야기다. 어느 시대건 연회 때는 술과 좋은 안주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때 술과 안주를 잔뜩 먹고 춤을 추는 등 놀면서 세월(年)을 잊자(忘)는 뜻에서 ‘망년회’라는 말이 생겼다.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로 들어서면 특권층 사람들 사이에서 걱정을 잊고 풀어버리자는 뜻으로 즐겼다. 망년회는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에 들어서서야 일반 시민들이 즐기게 된다. 일본 망년회의 술자리에서는 지위를 막론하고 마음 놓고 즐기는 문화도 있는데, 무례강(無禮講, ぶれいこう, 부레이코우)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의 ‘야자 타임’ 비슷한 것이다. 부레이코우라는 명칭이 역사적 자료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가마쿠라(鎌倉) 시대 말인 1320년대 초, 귀족이자 유학자인 히노 토시토모(日野資朝)와 그의 친척이자 동료인 히노 도시키(日野俊基)가 주최한 회의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란다. 고대 일본 귀족 연회에서는 좌석 배치, 음주 순서, 술잔의 수, 절차 등 의식이 강조되었으나, 중세 시대에 사무라이 가문이 권력을 잡으면서 부레이코우가 일반적인 연회 형식으로 퍼져 옛 격식을 없애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공식 연회에서 1차로 작은 잔 3, 중간 잔 3, 큰 잔 3개 도합 9잔을 마시고, 메인 행사 후에는 누군가 쓸어질 때까지 마시는 것이 규칙이었다고 한다. 술에 취해 무례하거나 토하더라도 흉이 되지 않았단다. 아무튼 1910년 무렵의 신문 곧 부산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중외일보, 신한민보 등을 보면 12월 한 달 내내 망년회 기사가 도배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다가 근래 코로나 전염병 창궐로 많이 수그러들긴 했다. 대만(臺灣)에서도 웨이야(尾牙)라는 용어로 12월 16일에 기업에서 직원의 노고에 감사하는 종무(終務)의 연회를 연다. 중국도 연회(年會)라는 이름으로 송년의 모임을 가진다.

우리 동양만 이런 모임을 하는 게 아니다. 미국도 연말 송년회 모임이 정말 대단하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열리는 회사 송년 파티는 ‘Office Christmas Party’로 부르는데, 요즘은 종교에 대한 포용성 차원에서 ‘Christmas’를 ‘Holiday’로 대체하여 ‘Office Holiday Party’로 부른다. 직장마다 난리라서 같은 이름의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가 있을 정도로 회사 송년 파티는 화제가 넘치고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행사이다. 미국도 코로나 창궐로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고 CNN은 전했다. 한국 직장 송년회는 부서 중심이지만 미국에서는 전사적, 또는 디비전(사업 부문) 차원에서 대규모로 열린다. 우리는 앉아서 먹고 마시는데, 그들은 서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열린다. 모든 파티에는 술이 없을 수 없으니 항상 이것으로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서양의 직장 송년 파티에 대한 에피소드를 제보받아서 익명으로 보도한 <Bored Panda>의 기사를 몇 개 소개하면 그들의 송년 파티의 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pisode 1>

80년대 일이다. 송년 파티장에서 술에 취한 나이 지긋한 동료가 음료 쟁반을 든 남자를 피하려고 뒤로 물러서다가 테이블 다리에 걸렸다. 그는 넘어지면서 사무실에 있던 이동식 칸막이에 부딪혔고, 12개에서 14개 정도 되는 칸막이 전체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테이블들이 넘어지고, 펀치볼이 바닥에 떨어지고, 유리잔이 깨지고, 먼지가 날리고, 음식이 바닥에 흩어지고... 모든 게 난장판이 되고 일순간 멈췄다. 그때 우리 모두는 목격했다. 60대 후반의 사장이 스커트를 걷어 올린 21살짜리 여성인턴을 책상에 엎드리게 한 채 온갖 짓을 다하던 장면이었다. 모두가 얼어붙었고, 사장은 바지를 올려 입으려고 발목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그다음 들린 소리는 칸막이를 무너뜨린 그 노인이었다. "괜찮아요?" 맙소사, 우리는 엉뚱한 장면에 모두 그를 잊고 있었는데, 그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털고 일어났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Episode 2>

회사 연말 파티에서 일어난 가장 황당한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저예요. 마감 근무를 해서 음식과 음료가 거의 다 떨어진 후에야 파티장에 도착했죠.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으로 댄스 플로어에 뛰어들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춤을 추었어요. 저는 폴란드 증후군 때문에 왼쪽 가슴이 발육되지 않아 짝짝이 가슴이었어요. 그래서 브래지어 컵에 실리콘 보형물을 착용하고 있었어요. 너무 열심히 춤을 춘 덕분인지, 문득 가슴 보형물이 제자리에 있지 않음을 느꼈어요. 아마 땀으로 인해 미끄러져 나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댄스 플로어에 떨어져서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거나 밟혀서 사라져 버렸더라고요. 저는 재빨리 닌자처럼 파티장을 빠져나왔죠. 다음 날, 동료들은 댄스 플로어가 무슨 이유인지 미끄럼틀처럼 변해서 난리가 났다고 떠들었어요. 다행히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이게 오늘 제가 털어놓을 고백이에요.

<Episode 3>

이번 파티는 무제한 술이 제공되는 바람에 모두 만취 상태였다. 최근 이혼한 한 여자는 화장실에서 아무나 꼬시고 다녔다. 한 남자 영업 사원은 코밑에 하얀 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는데, 화장실에 가서 코카인을 흡입하는 것조차 귀찮았는지 파티장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서 가루를 부수고 있었다. 더욱 해괴한 것은 사장 부인은 작은 방에서(그렇다고 사적인 공간도 아니고, 비어있는 공간도 아니었다.) 20살 된 남자 인턴과 은밀한 행위를 하고 있었다. 사장은 다른 방에서 젊은 여비서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결국 사장이 아내를 발견했고, 두 사람은 마주서서 고성을 지르며 싸웠다. 그 사이 인턴은 재빨리 지퍼를 올리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새벽 3시쯤 파티장 직원들이 바를 잠그고 더 이상 술을 팔지 않자, 중년의 어리숙한 회계사 같은 남자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는 테이블 위로 뛰어올라 바지를 내리고 대변을 봤다. 테이블이 반쯤 무너지면서 바지가 발목에 묶여서 그는 겨우 일어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가버렸거나 정신을 잃었지만, 남아 있던 우리는 그저 구경하며 그를 응원했다. 직원들이 그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사방에 똥이 널려 있어서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우리 중 몇몇은 잠긴 바에 다시 들어가 양주, 맥주, 그리고 온갖 잡다한 술병들을 큰 플라스틱 통에 담아 다른 방으로 가져가 파티를 계속했다. 2주의 연말 휴가 후에 모두 직장으로 복귀했고, 그 후 다음 12월까지 아무도 그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 해를 최고의 해로 기억하며 즐거워했다.

아마 과거에 어느 사회나 직장의 송년회 자리에서 이런 정도의 사건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다만 서로 묵인하고 소문이 널리 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요즘 신세대들의 음주 문화가 옛날과 다르니 더 이상 그런 추태가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뿐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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