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맛있는 감(柿, 시) 이야기

by 금삿갓

지난달 지인(知人) 둘로부터 감을 선물 받았다. 하나는 단감이고, 하나는 대봉감이었다. 감이란 과일은 동아시아가 원산지인데, 우리에겐 매우 오랜 기간 익숙한 과일이다. 그러니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곶감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감나무의 품종은 매우 다양하며 일본의 경우 1,000여 종이 넘는단다. 식물의 학명은 감나무속 ‘Diospyros Kaki(신의 과일)’이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피터 툰버그(Carl Peter Thunberg)가 1775~76년 일본 방문 중 사찰이나 신사 경내에서 감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고 감에 '신의 과일'이라는 뜻의 감(Diospyros kaki)이라는 학명을 붙였다. 1800년대 이후 감은 유럽과 남미로 전해졌고, 그곳에서도 일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은 품종이 있지는 않지만 감을 표현하는 이름은 감의 상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반시(盤柿 : 납작 감), 건시(乾柿 : 곶감), 홍시(紅柹), 연감, 연시(軟柹), 삽시(澁柹 : 떫은 감), 땡감, 청시(靑柿), 풋감, 물감, 침시(沈柹), 단감 등등이다. 건시(乾柿 : 곶감)도 말리는 방법에 따라 볕에 말린 백시(白柹)와 황시(黃柹), 불에 말린 오시(烏柹), 꼬챙이 없이 납작하게 말린 준시(蹲柹)로 구별된다. 곶감의 하얀 분은 당분이 환원된 당 알코올로 시상(柹霜) 혹은 시설(柹雪)이라고 하며, 단맛이 있어도 혈당을 높이지는 않는다. 또한 감은 얇게 썰어 말린 감고지로도 활용한다. 지금은 세계 각지로 퍼져있지만, 원래 감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만 나는 동아시아 특수 과일이다. 그래서 감에 얽힌 이야기도 세 나라에 많이 남아있다. 감나무의 수령은 100년을 넘기기 때문에 한번 심으면 3대가 너끈히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으니 아주 좋은 과일이다. 감나무는 버릴 것이 별로 없는 수종(樹種)이다. 감나무 잎은 감잎차로 음용되고, 심지어 감꼭지를 한자로 시체(柹蔕)라고 하는데 달여서 마시면 딸꾹질의 특효약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감나무로 만든 골프채(Persimmon Woods)가 수십 년간 골프장을 주름잡았다. 영어의 퍼시몬은 북미 지역 인디언 알곤킨(Algonquin)족이 '말린 과일'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던 'Putchamin' 또는 'Pessamin'이라는 단어가 어원으로 추정된다. 북미 인디언들의 조상이 동아시아에서 감나무 종자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닐까?

중국 당(唐) 나라 시절의 단성식(段成式)은 그의 저서 <유양잡조(酉陽雜俎)>에 감나무의 칠덕(七德) 즉 7가지 장점을 속담으로 기록했다. ①장수(長壽) - 수령이 10년을 넘긴다. ②음대(蔭大) - 그늘이 커서 쉬기 좋다. ③무조소예물(無鳥巢穢物) - 새 둥지가 없어서 배설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④무충식(無蟲蝕) - 벌레가 먹지 않는다. ⑤엽동미염(葉彤美艶) - 단풍이 붉어 보기 좋다. ⑥석과누누(碩果累累) - 열매개 대대로 풍성하다. ⑦낙엽비대(落葉肥大) - 잎이 넓어 종이 대용으로 쓸 수 있다. 그 외에도 오상(五常), 오색(五色)도 주장했다. 명(明) 나라의 오승은(吳承恩)도 <서유기(西遊記)>에서 비슷하게 감나무의 칠절(七絶)을 주장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감꼭지를 만(卍) 자 문양으로 형상화하여 만사여의(萬事如意) 한 것으로 여겼다. 아래의 시는 작자가 미상이지만 중국인들이 감에 대해서 읊은 시가 우리와도 다르지 않다.

秋深柿樹挂灯籠(추심시수괘등롱) / 가을 깊으니 감나무에 등불이 걸렸네.

葉冬枝残韻未窮(엽동지잔운미궁) / 겨울 잎 남은 가지 운치 다하지 않았고

鳥雀時來尋美味(조작시래심미미) / 참새들 때때로 맛있는 걸 찾아오니

山村景色入詩中(산촌경색입시중) / 산촌의 경치가 시 가운데 드는구나.

‘정건삼절鄭虔三絶’이라 일컬어졌던 당나라의 정건(鄭虔)은 글씨를 연습할 종이가 없었을 때 감잎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도 단성식의 감의 칠덕을 인용하면서 칠절(七絶)로 표현한 것이 많다. 오상(五常)이란 文(문 : 감나무 잎에 글씨를 쓸 수 있다)·武(무 :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로 쓰인다)·忠(충 : 겉과 속이 한결 같이 붉다)·孝(효 : 이 없는 노인도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節(절 : 과일 가운데 유일하게 서리를 이기고 晩秋(만추)까지 버틴다)을 말한다. 오색(五色0이란 黑(흑 : 나무의 목질이 검다)·綠(녹: 잎이 푸르다)·黃(황: 꽃이 노랗다)·赤(적: 열매가 빨갛다)·白(백: 곶감에는 흰 가루가 있다)을 말한다. 더구나 삼과실(三果實 : 대추, 밤, 감)로 제사상에 필히 진설되는 과일이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李奎報)도 감에 대한 시를 많이 남겼는데, 감의 칠절을 자주 언급했다. “物兼七絶名偏重(물겸칠절명편중) / 칠절을 겸한 물건이니 이름이 치우치게 소중하네.” 또는 “植物憐渠兼七絶(식물련거겸칠절) / 식물이 사랑스럽게도 칠절을 겸했네.”라고 읊었다. 영물시(詠物詩)를 많이 남긴 서저정(徐居正)도 감의 칠절을 “百果盤中少顔色(백과반중소안색) / 소반 가운데 온갖 과실들이 무안하게, 能兼七絶擅神功(능겸칠절천신공) / 능히 칠절을 겸해 신공을 맘대로 하네.”라고 읊었다. 뭐니 뭐니 해도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시조 <조홍시가(早紅柿歌)>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 이것이 압권이다.

일본의 경우 나라현(奈良縣)에 있는 요시노산(吉野山)은 일본 3대 벚꽃 명소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감나무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그들은 감잎에 사랑 시를 써서 시냇물에 띄워 보내는 낭만적인 풍습이 있었다. 일본 하이쿠(俳句)의 거장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가 요절하기 전에 이곳의 유서 깊은 300년 된 타이산로(泰山路) 료관(旅館)에 묵으면서 종업원이 깎아주는 감을 먹으면서 하이쿠 한 수를 지었다. "감을 먹으니 호류지(法隆寺) 절의 종소리가 들리는구나."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풍습이자 나라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꼭 경험해 봐야 할 것은 바로 카키노하(柿の葉, 감잎) 스시이다. 생선을 주재료로 하여 감잎으로 싸서 만드는 이 스시는 슈겐도(修驗道)의 발상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요시노산의 특산품이다. 요시노산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생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기이(紀伊) 반도 남동쪽에 있는 구마노나다(熊野灘) 해에서 여기까지 가져왔다. 이때 생선을 항균 성분이 있는 감잎으로 싸면 며칠 동안 보관할 수 있었다. 요시노에는 감나무가 많이 자라기 때문에 신선한 감잎을 구하기가 항상 쉬웠기 때문이다.

일본에도 우리와 비슷하게 감나무와 얽힌 전래 동화인 ‘원숭이와 게’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게가 주먹밥을 들고 길을 가는데, 원숭이가 근처에서 주운 감 씨와 주먹밥을 교환하자고 말을 걸어왔다. 게는 처음에는 싫었지만 씨를 심으면 나무가 자라 감이 잔뜩 열린다는 원숭이의 말을 듣고 주먹밥과 그 감씨를 교환했다. 게는 얼른 집에 돌아와서 씨를 심고 정성껏 가꿨다. 그러자 감씨가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었고 가을이 되자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게는 감이 먹고 싶어 졌지만 나무에 오를 수 없기 때문에 감을 딸 수가 없다. 그때 원숭이가 나타나서 게 대신 감을 따주겠다며 나무에 올라갔지만 약은 원숭이는 자기가 먹기만 하고 게에게는 전혀 주지 않았다. 게가 감을 달라고 하자 원숭이는 파랗고 딱딱한 땡감을 하나 따서 게의 등껍질을 향해 힘껏 던졌다. 게는 그 감에 맞아 등껍질이 쪼개지는 치명상을 입었지만 원숭이는 그런 게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뒤 게의 친구들인 알밤, 벌, 절구가 찾아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게는 지금까지의 일을 얘기하고 숨을 거뒀다. 알밤, 벌, 절구가 게를 묻어준 다음 게의 무덤을 돌보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알밤, 벌, 절구는 원숭이의 집에 들어가서 각각 숨었는데 어디에 숨었냐면 알밤은 화로 속에, 벌은 물 항아리 뒤에, 절구는 지붕 위에 숨었다. 때마침 원숭이는 산에 가고 없었다. 저녁이 되자 원숭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원숭이는 화로에 몸을 따뜻하게 하려다가 알밤이 날아와 원숭이의 이마를 딱 때렸다. 원숭이는 이마의 화상을 식히려고 물 항아리로 갔지만 항아리 뒤에 숨어 있던 벌이 나와 원숭이를 마구 찔러대자 벌을 피해 집 밖으로 도망치던 원숭이는 절구에 깔렸다. 그렇게 호되게 혼난 원숭이는 이들에게 사과한 뒤 멀리 달아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감은 우리 인간의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애환을 함께한 과일이다. ‘호랑이가 온다.’라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에게 ‘곶감 줄게.’라고 하면 그칠 정도로 단맛의 간식으로 활용되어 기록에는 간식용 홍시와 곶감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덜 익은 땡감은 떨떠름하다는 표현처럼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땡감 씹은 얼굴’ 등으로 사용된다. 또한 게으른 사람을 두고 ‘감나무 아래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등의 말도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입에 감을 문 신부>, <황소를 감과 바꾼 욕심쟁이>라는 것도 있다. <입에 감을 문 신부> 이야기는 좀 부족한 여동생을 시집보내면서, 오빠들이 쓸데없이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는 뜻에서 감을 문 듯이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동생이 진짜 감을 물고 앉아 있었다. 오빠가 그 모습을 보고 눈짓을 하자, 또 하나를 더 물라고 하는 줄 알고 감 하나를 더 물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황소를 감과 바꾼 욕심쟁이> 이야기는 모처럼 큰 감을 딴 농부가 감을 임금께 바치고 상으로 금덩어리를 얻었다. 이것을 본 옆집의 욕심쟁이가 황소를 일부러 사서 임금께 바치자, 임금은 며칠 전에 들어온 감을 주어서 그만 욕심쟁이는

망해버렸다는 내용이다. 어느 시대 누구든 맛있는 감을 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감(感)을 잘 잡아야 하는데, 오늘날의 정치판을 보면 감을 잡기는커녕 눈을 감고 아옹하는 격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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