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단오절의 여심(女心) 애로서(曖露書)

채색 판화에서 풍겨 나오는 한(恨)

by 금삿갓

지금이야 명맥이 거의 끊어졌지만 매년 음력 5월 5일은 온 국민들이 즐기던 단오절이다. 필자 금삿갓이 어릴 때 시골에서는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였다. 쑥떡과 각종 음식을 만들고, 동네 느티나무에 그네를 만들고, 옆의 모래밭에는 씨름판이 열린다. 온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 밑에 모여서 제사를 올리고, 잔치를 열어 먹고 마시고 즐겼다. 이러한 절기에 따른 각종 풍속 등을 기록한 서적 중 중국판은 종름(宗懍)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가 있고, 우리나라는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가 있다. 이런 책에 단오절의 민속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단오절은 중국에서는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용선절(龍船節), 중오절(重午節), 단양절(端陽節), 천중절(天中節), 하절(夏節), 쑥절(艾節), 상일(上日), 오월절(五月節), 창포절(菖蒲節), 천의절(天醫節), 초약절(草藥節), 욕난절(浴蘭節), 오일절(午日節), 정양절(正陽節), 용일절(龍日節), 종자절(粽子節), 오황절(五黄節), 시인절(詩人節), 해종절(解粽節), 단예절(端礼節) 등 무척 다양하다. 우리도 순 한글로 수릿날로도 부르고, 그네를 뛴다고 추천절(鞦韆節)로도 불린다. 원래 동양에서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을 명절로 치는데, 단오는 실제 여성들을 위한 날인 것 같다. 여성들이 주로 즐기는 행사가 많기 때문이다. 쑥으로 덕을 만들어 먹거나,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한다. 옥색치마를 둘러 입고 하늘 높이 그네를 타는 멋도 여인들의 몫이다. 모래사장에서 황소를 걸고 즐기는 씨름만이 남성의 놀이일 것이다. 이 그림은 춘화도(春花圖)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민화 스타일로 보인다.

필자 금삿갓이 참여하고 있는 한시 동호회인 <근우시회(槿友詩會)>의 월례모임이 열리는 인사동 한정식집 <선천(宣川)>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시회를 마치고 사진으로 찍어 보았는데, 액자의 유리로 인하여 빛이 반사되어서 선명하게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등(燈)을 끄면 어두워서 찍을 수 없고, 등을 켜니 빛이 반사되고, 촬영자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두 여인이 계곡의 흐르는 맑은 물에서 시원하게 씻고 있는 광경이다. 계곡이나 냇물 등 주변 사물은 전혀 표현되지 않고 다만 상상할 뿐이다. 어쩌면 짓궂은 사내 녀석들이 바위 뒤쪽이나 수풀 저쪽에서 침을 흘리면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구도이다. 두 여인 모두 저고리 등 상의는 모두 벗고 풍만한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삼단 같은 머리는 아마 그 크기와 볼륨감으로 보아 생머리는 아니고 가체(加髢) 머리로 장식한 듯하다. 이런 가체 장식의 모습은 왕실이나 고위 귀부인들의 성장(盛裝)한 모습에 주로 나타나고, 일반에서는 기생들의 외출 복식이다. 쪼그리고 앉은 여인은 오동통하게 농염한 모습이고, 일어 선 여인은 옥색 치마를 활짝 걷어 올리고 금방이라고 물에 풍덩 뛰어들 태세이다. 약간 봉구스럼 한 배로 보아 임신한 몸매일 수도 있겠다. 두 여인 모두 초승달 같은 가녀린 눈썹에 가늘고 긴 눈매이다. 코날은 통통하게 살집이 있고, 입술은 조그마하게 붉고 매혹적이다. 가늘고 긴 손가락과 잘 다듬어진 긴 손톱이 궂은일을 전혀 하지 않는 직업일 것이다.

이제 이 그림의 작가와 그 내용을 알아보자. 다른 일반적인 작품과 비슷하게 그림 왼쪽 상단에 화제(畫題)의 글이 적혀있다. <辛酉年(신유년) 端午(단오) 菖蒲節(창포절) 也欣(야흔) 朴榮愛(박영애) 飜刻(번각)>이라고 쓰였다. 신유년이면 1981년이다. 더 올라가면 1921년인데 이 작품이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창포절은 단오절의 다른 이름이다. 창포는 연못이나 개울가 등 습지에 자생하는 다년생 풀인데, 잎과 줄기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다. 이 식물은 한방의 약재로도 쓰인다. 흔희들 노랑 예쁜 꽃이 피는 꽃창포와 창포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꽃창포는 붓꽃과의 식물로 다른 종(種)이다. 필자 금삿갓이 찾아보니 작가 야흔 박영애는 1952년생으로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번각(飜刻)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먼저 초벌로 판각(板刻)을 한 것을 화선지(畵宣紙)에 찍어서 나중에 채색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번각이란 용어는 그런 작품에 쓰인다. 이 음식점의 같은 방의 맞은편에는 한국화로 한국의 여인 모습을 담은 민화가 걸려 있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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