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벨로라도(Belorado)에서 27.5Km를 걸어서 아헤스(Ages) 마을에 도착했다. 아주 오래된 마을이지만 정말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다. 작은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는 3개나 있었다. 마을의 중간에 있는 엘 파하르(El Pajar) 알베르게를 잡았다. 오랜만에 합숙을 하지 않고 투 베드 룸(Two Bed Room)을 거금 45유로를 주고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슈퍼마켓도 없고 작은 바(Bar)를 겸한 구멍가게 수준의 상점이 전부였다. 바의 메뉴도 그렇고 진열된 상점의 물건 또한 볼품이 없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이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에 가져다 놓고 마을을 한 바퀴 산보 겸 돌아보았다.
이 마을에 있는 산따 에우랄리아 데 메리다 성당(Iglesia de Santa Eulallia de Merida)이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성당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현관이 돋보이며,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Garcia El de Najera)의 유해가 성당의 반석 밑에 매장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Garcia El de Najera)는 팜플로나 왕국의 왕으로 가르시아 3세 사노이츠로도 불리는데, 레온왕국의 페르난도 사노이츠와 이 마을 옆에 있는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하여 전사했다. 그의 군대의 부하들이 그의 시신 중 내장과 일부를 이 성당자리에 묻었다는 전설이 있다. 나머지 시신은 팜플로나로 이송하여 매장하였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성당에 갔더니 이 마을의 할머니 한 분이 성당을 지키고 계셨다.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고, 조선 과객 금삿갓은 스페인어를 모르니 의사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할머니는 할머니 대로 열심히 설명하는데 한 귀로 듣고 흘릴 수밖에 없어서 약간 미안했다. 하지만 기부금 모금 바구니를 들고는 기부금을 좀 내라는 대목은 둘 다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성당 내부의 사진도 찍고 할머니랑 같이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성당의 종탑 위에는 새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순례길의 높은 건축물에는 저렇게 새집을 지어 놓은 곳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