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내려와서 아스토르가(Astorga) 마을 입구에 오면 길가 옥수수 밭의 커다란 전봇대 위에 새가 둥지를 틀어 놓았다. 이곳은 마을이라기보다 중소형 도시이다. 역사와 규모가 상당해 보인다.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차 철로를 건너야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철로에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기차가 지나갈 때만 차단기가 내려와서 행인이나 차량의 통행을 막는 장치가 되어 있을 텐데, 여기는 다르다. 차간기가 아예 없고 철망으로 막아놓았으며. 건너기 위해서는 육교를 통해서 가야 한다. 육교도 우리처럼 거의 급경사의 계단으로 설치한 게 아니라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완만한 경사도로 설치하여 10m도 안 되는 철길을 건너려면 200m 정도의 육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건너야 했다. 오늘 아침 발베르데 데 라 비르겐(Valverde de la Virgen) 마을에서부터 장거리인 39Km를 걸어온 조선 과객 금삿갓으로서는 안전은 막론하고 매우 피곤한 시설이었다. 아픈 다리와 발로 볓 백 미터를 더 걷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 이곳에서 만나 스페인 젊은 남녀 순례객들도 마음은 마찬가지로 보였다. 앞서 가다가 우리한테 뒤쳐져서 어슬렁거리면 육교를 건넌다. 피곤한 나머지 도시의 경관을 구경하기보다 빨리 숙소를 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도시 입구에 풍만항 여체의 여인이 아기를 안고 있는 조형물이 우리를 반긴다. 도시의 주요 도심은 언덕 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시 힘든 다리를 이끌고 숙소를 찾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성당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고자 아스토리가 성당 옆의 골옥으로 들어가서 처음 눈에 들어오는 숙소를 들어갔다. 도시 초입에서 본 여성상처럼 넉넉한 모양의 여성이 조선 과객을 반겨 주었다. 숙박에 관한 수속을 마치고 침대를 배정받고, 빨래터와 욕실 사용에 대한 주의 사항을 듣는다. 빨랫줄이 건물의 3층 유리창에서 마주 보는 건물의 같은 높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라도 도저히 빨래를 널고 걷을 수 없는 구조다. 그분이 빨래 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깜박했나 보다. 물에 젖은 빨래를 들고 이리 저리 궁리하는데 먼저 온 프랑스 여성 순례객이 빨랫감을 들고 3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이기에 따라 올라갔다. 3층에 가니 유리창을 열고 바로 앞에 설치된 도르래를 돌려서 빨랫감을 널고, 도르래를 돌려서 저쪽으로 보내는 구조였다. 참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설물이다. 오늘은 운이 좋아서 숙소가 무료이다. 산 하비에르(San Javier) 알베르게이다. 성당 옆쪽의 골목에 있었다. 아스토르가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기부금도 받지 않고 모든 순례객들이 무료이다. 저녁이나 아침 식사는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
이 도시는 스페인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오래된 교구 중 하나의 수장이며, 관할권은 레온 지방의 절반, 오렌세 및 자모라 일부를 관할한다고 한다. 레온 지방 제5 사법당의 수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시도 고색창연하고, 규모도 제법 크다. 특히 성당과 주교궁의 크기는 대도시 성당과 맞먹을 정도였다. 아주 오랜 옛날 켈트족은 기원전 275년경에 아스뚜레스(Astures)와 깐따부리(Cantabri)로 알려진 이 지역 주변에 거주했고, 나중에 그들은 아스투리카(Asturica)라고 불리는 지역의 로마 요새 중 하나가 되었다.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이곳을 아스투리카 아우구스타(Asturica Augusta)로 명명했다고 한다. 로마시대부터 군사와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아스또르가 성벽은 아직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