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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07. 2024

9. 마그리트의 눈으로 강간당한 애로서(曖露書)

투시경으로 본 얼굴의 몸

남자들은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여인들의 어느 부위를 주로 볼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도 있지만 얼굴을 제외한 부분으로 볼 때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 <강간(Rape)>에 나타난 얼굴일 것이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봄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다가오는 여의의 몸매에서 사내들의 눈이 가는 부위를 모두 모아 여인의 얼굴로 옮겼다. 눈으로 마구 강간하기 쉽게 한 곳으로 모은 것이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림의 세부적인 면을 도외시(度外視)하고 전체를 구도로 그림을 보자. 전체의 구도는 분기탱천(憤氣撑天)하여 머리를 빳빳하게 쳐든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남성의 상징인 음경 위에 풍성한 음모인 머릿결을 붙이고, 여성의 중요한 성징(性徵)을 모아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양성(兩性)을 표현한 초현실주의 작품의 완결판 같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전통적인 기법인 초상화의 형식 위에 이처럼 성기로 이루어진 얼굴을 완성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여러 작품을 말이다. 그는 이런 그림에 대하여 말하기를 “내 그림은 눈에 보이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세상이 나에게 제공하는 인물에 의해서만 형성된다. 이 인물들은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순서로 모아져 있다.” 정말 맞는 말 같다. 보이지 않게 가려져서(가릴 애曖) 그래서 더 신비로운 것들만 순서대로 모아서 나타낸(노출할 露) 그림의 에로스(Eros)를 금삿갓이 글로 써서(글 書)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사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여성 성기의 얼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성기로 그린 얼굴 작품도 있다. 단순한 배경 처리가 피사체를 더욱 앞으로 클로즈업하여, 이 기묘한 얼굴에 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배경의 먼 하늘과 지평선은 주제가 거대한 느낌이 들도록 관람자의 시선을 잘 배려하고 있다.

사실 서양 미술사에서 인간의 성기는 종교적, 주술적 의미체계의 해석 위에 등장하고 있다. 상징으로서 성기에 대한 고정된 의미는 시대정신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변화를 일으킬 때 그 해석의 틀을 달리 적용해 왔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성기에 대한 숭배는 그 형태만 변화된 채 오늘까지도 주술의 형태가 아닌 예술의 형태로 변함없이 흘러간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화파가 성의식에 대한 공격적이고 진보적인 생각들을 자신들의 중심 화제(畫題)로 삼아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들은 성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 관계를 그림으로 규명코자 했다. 마그리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이고 지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작업을 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침실의 철학>은 매우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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