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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슈슈 Aug 18. 2024

역방향 경기도 출퇴근러의 넋두리

내가 놓친 직주근접

오늘 출근길 얼마나 걸리셨나요?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근무자의 출퇴근 시간은 120분으로 직장인 네 명 중 한 명은 아침 7시 이전에 집을 나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직주근접(職住近接):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운 것
(출처: 부동산용어사전)

‘집을 매매할 때 직주근접을 고려하라.’라는 부동산의 기본 공식과도 같은 말이 있다. 하지만 가족들의 출근지나 자녀의 교육환경 등을 생각하다 보면 훌쩍 직장 근처로 이사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글은 서울에 거주하는 역방향 경기도 출퇴근러의 넋두리이다.


나의 첫 직장은 오버타임이 일상이던 병원이었다. 출퇴근에 쏟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자 자취방을 병원 바로 앞 건물에 잡았다. 현관문을 열면 직장으로 3분 만에 출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직주근접 그 자체였으나, 창문을 열면 직장뷰에 현관문을 열면 직장동료들을 마주치기 일쑤여서 사생활 분리가 안되었다. 마치 당직실에서 누워 자는 듯 퇴근했으나 퇴근하지 못한 개운치 못한 느낌이 들 무렵, 왜 선배들이 한 두 블록이라도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하라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내 자취방은 지리적 장점을 이용해서 지인들의 숙식해결이나 음주를 위한 아지트가 되어갔다.   


두 번째 직장이던 회사는 양재에 위치해 당시 일산에서 왕복 세 시간이 넘는 장거리 출퇴근에 시달렸다. 매일 아침 3호선 지하철에서 졸며 상모 돌리기를 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한 시간이 넘는 지하철 여행에서 하차하면 큰 게 기다리고 있었다. 서초 18 마을버스는 정말 그 번호의 욕이 절로 나오는 마을버스였다. 버스가 보이기 시작하면 다들 조금씩 비장해졌다. 앞뒤 출입문이 열리는 동시에 내리려는 자와 타려는 자와의 눈치 싸움, 한 명 만 더를 외치며 마지막 누군가는 출입문에 거의 매달려 가게 된다. 지각하지 않으려는 자들의 각자도생의 장이었던 서초 18번. 임신 후 출산 직전까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던 나는 서초 18번을 타지 않기 위해 택시에게 여러 번 구호요청을 해봤으나 공급에 비해 수요가 과하게 많던 양재역에 빈 택시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나는 배를 가리고 앞쪽 출입문에 몸을 비집어 넣어 기사님 옆에 위치한 돈통에 매달려서 도착지까지 가야 했다. 어릴 적 예능 프로그램에서 ‘승용차에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탈 수 있을까?’ 실험하던 방송이 생각났다. 더 많이 태우기 위해 사람을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포개어 탑승객 모두 기이한 자세를 취해야만 했던 그 티브이쑈가 현실이구나. 밥벌이의 고단함이 짙게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회식 후 대중교통을 타고 귀가하는 사람이 부러운 직장인이다. 늦깎이 교직 생활을 시작하며 집은 서울에, 직장은 경기도에 있는 운명을 갖게 되어 정년퇴직하는 그날까지도 교통체증과 사투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첫 발령지는 포천시 일동면인데 종종 지인들이 이동갈비를 먹으러 가는 길에 일동면을 지나며 전화를 건다.

"너 여기 영등포에서 출퇴근 어떻게 했어. 여긴 일박 이일해야 올 수 있는 곳인데? "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넘기지만 나는 2년간 포천으로 180km 통곡의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당시 영유아였던 두 아이를 데리고 임용시험을 준비하여 두 번의 시도 끝에 최종합격한 나는 ‘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이다!’라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하지만 다음날 초임 발령 학교에서 온 연락을 받아 지도에서 학교명을 검색하자마자 길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포천시 일동면’ 

그곳은 집에서 차가 막히지 않으면 편도로 1시간 40분, 내부 순환로가 막히면 귀갓길이 편도로 세 시간 가까이 걸리던 곳이었다. 이러려고 100일 지난 젖먹이와 두 살 된 아기를 떼어두고 시험을 시작했던 것이 아닌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통근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장 교육청으로 달려가 발령 담당자에게 통사정이라도 하거나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생활할 수 있는 관사를 기대했지만 탈락해 영락없이 자취방이라도 구해야 하는 신세였다. 남편과 상의 끝에 일주일에 며칠은 포천에 머물며 서울집과 왔다 갔다 하자며 큰맘 먹고 방을 보러 갔다. 하지만 퀴퀴한 낯선 공기의 원룸에 들어가자마자 오매불망 엄마를 기다릴 아이들이 눈에 밟혀 감정이 복받쳤다. 주인 없는 방에서 초면인 부동산 사장님을 마주하고 왈칵 울음이 터졌다. 이렇게 생이별할 수는 없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일동면까지 통근을 하기로 결심했다.


 10년간 장롱면허 상태였던 내가 장롱문을 열자마자 하루에 180km씩 운전을 해야 하다니. 고속도로 통행료만 매일 4,200원, 기름을 가득 채워도 일주일면 동났다. 만수르도 아니고 월급도 짠 초임 교사가 이렇게 길에 기름을 들이부어도 되는가? 유류비와 톨비를 계산기로 두드려보니 한 달에 40만 원은 훌쩍 출퇴근으로 지출되는 것이었다.

'2년만 참자 2년만, 탈 포천 하는 그날까지 돈이 문제냐, 가족을 위해 참는다.'

 영등포구에서 도대체 출퇴근을 어떻게 하냐는 동료들의 걱정에 “나중에 은퇴하면 택시 하려고요!” 하며 찡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것부터가 챌린지였던 초보운전 시기, 대형 트레일러들 사이로 네 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운전은 마치 목숨을 건 미션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는 하루 걸러 로드킬 된 고라니가 붉은 이불을 덮고 도로에 누워있었다. 살아있는 고라니가 아니라 다행인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대형 트럭에서 파쇄석들이 도로 위로 떨어진다.

‘돌빵이다!!’ 포천에는 채석장이 많다 보니 바위만 한 암석을 운반하는 대형 트럭들이 많았는데, 운전하며 ‘저 바위가 갑자기 나에게 굴러 떨어진다면'? 과 같은 시나리오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플레이되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채석장 트럭은 간혹 도로에 작은 자갈들을 흩뿌려 도로가 마비되곤 했고 장마철에는 낙석으로 한 두 차선이 통제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반파된 채로 사고 처리를 하는 차들이 갓길에 줄지어 세워진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면 오늘 하루 생존했다는 안도감에 파김치가 되어 쓰러졌다.      

 포천이 직장이라 남들은 경험하지 않는 특이한 출근 풍경도 있었다. 군부대가 많은 지역 특성 탓에 출근길에 도로 위 줄 지은 군부대의 탱크 행렬을 보곤 했다. 묵직한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탱크와 군용차들을 보며 출근하던 나는 출근길 풍경에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맘속으로 그들을 응원하곤 했다.

 겨울에는 백운산 산봉우리마다 눈이 새하얗게 내려앉았다. 눈을 얹고 거칠게 굽이치는 산자락들이 병풍 속 그림과 같이 압도적이라 운전하며 혼잣말로 자주 감탄하곤 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서울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출발한 나는 또다시 타임머신을 탄 듯한 출근길에 이질감을 느끼지만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풍경에 탁했던 마음이 정제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경기도 통근러인 기정이 소개팅 남과 하는 대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계란을 보면 경기도는 계란 흰자예요. 노른자는 서울이죠. 경기북부에서 온 당신과 경기남부에서 온 나는 노른자 속을 뚫고 지나온 거예요 " 나는 노른자에서 역방향 흰자 방향으로 출근한다는 점에서 기정이 보다는 약간 나은 상황이었다. 합격만 하면 북한이라도 간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던 수험생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합격하니 순간의 불안에 흔들려 서울로 응시를 하지 않았다는 안타까움이 사무쳤다. 막상 경험해 보니 계란 흰자는 노른자에 비해 면적이 너무 넓었다. 나는 그렇게 직주근접과 멀어졌다.     


 포천에서 2년간 근무 후 고양시로  발령을 받았다. 평균 세 시간 반을 출퇴근에 소비하던 워킹맘으로서 한 시간 반 정도의 왕복 소요 시간은 출퇴근길의 난이도를 가뿐히 낮추었다. 운전 거리가 180km에서 40km로 줄어든 물리적 거리에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는 길이 행복할 정도였다. 하지만 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나, 동료들과 맥주라도 한잔 하고픈 날이면 직주근접의 서울행이 너무나 간절하게 느껴진다.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려면 적어도 두 시간 전에 빨간 광역버스를 타고 일산의 어느 정류장에서 두어 번의 버스 환승을 해야만 출근을 할 수 있는 신세이다 보니 지하철 환승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서울에서의 이동과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여전히 기상예보에 귀 기울이며 출근길 교통마비에 어느 길로 가야 제시간에 도착할지 네비를 마구 눌러보는 삶. 이것은 수도권 출퇴근러의 운명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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