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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슈슈 Aug 20. 2024

이모, 찜닭 대자 하나요!

누구에게나 소울푸드 하나쯤은 있다.   

 내 고향 경상북도 안동에 방문하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는 안동 간고등어, 안동찜닭, 마늘한우갈비 3종 세트가 있다. 이 중 내 삶과 가장 맞닿아있던 음식은 단연 안동찜닭이다. 


학창 시절, 3인 이상 모였는데 밥을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안동찜닭을 먹었다. 어린 시절 떡볶이도 먹고 순대도 먹었지만 안동찜닭은 수중에 얼마 되지 않던 용돈으로 가장 식사답게 한 끼를 채워주었다. 분식이나 인스턴트 따위가 넘보지 못하는 그것은 '요리'였다. 

<매콤 달달 짭짤이 공존하는 도파민 솟는 안동찜닭>

 당시 찜닭 한 마리의 양은 서너 명의 인원이 모였을 때가 딱이었다. 하지만 놀다 보면 인원이 늘어나는 것은 다반사였고 이럴 땐 밥 한 두 공기를 추가해 남은 국물에 슥슥 말아 비벼 양을 늘렸다. 식사 말미에는 국물에 당면도 졸아 불어갔고 쫄깃한 닭고기의 단백질에 이은 흰쌀밥의 탄수화물 폭격으로 포만감이 두둑한 식사가 될 수 있었다. 고등학생시절, 나와 친구들은 야간 자율학습 전 석식 메뉴가 맘에 들지 않거나 별식으로 으쌰으쌰 해야 하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찜닭을 배달주문했다. 당시에도 각자의 기호에 따른 찜닭집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교우관계가 깊어지는 단계에서  

"난 위생통닭 먹는다, 니는?" 

"난 원래 사대부 찜닭인데, 요즘은 유진 통닭 시킨다." 이런 찜닭 기호에 관한 대화가 호구조사하듯 이어졌다. 그래서 주문 전 당연히 어느 찜닭 집에 주문할 것이냐는 평화를 위한 사전 협의 사항이었다. 각자의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각출하여 몰래 학교 정문 주위를 서성이면 배달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부와앙~' 소리를 내며 등장하곤 했다. 찜닭과 일회용 비닐봉지에 묶여있던 치킨무를 펼쳐놓고 우리는 참 게걸스럽게 먹었다. 찜닭 하면 학창 시절이 주로 생각나는 이유는 인당 4-5천 원씩만 모아도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었던 최강 가성비 서민 음식이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찜닭 가격이 만 원대였으니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전국적으로 찜닭이 프랜차이즈 바람을 타고 대중화되었음을 고려한다 해도 지금은 대자 기준 48000원의 '고오급 요리'가 되어버렸다.  


 닭요리지만 안동찜닭은 닭볶음탕과 다른 종류의 음식이고 달짝지근한 간장 베이스를 쓴다고 하여도 돼지갈비찜, 소갈비찜과도 별개의 음식이다. 간장과 캐러멜 소스를 기반으로 달달하고 짭짜롬한 맛이 맛의 중심을 잡고 있고 빨간 건고추가 매콤하고 얼얼한 맛을 더한다. 감자와 양파는 큼지막하게 숭덩숭덩 썰어 푹 익히고 당근은 어슷 썰기로 색깔을 더하는데 사실 비주얼로 봐서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찜닭과 다른 요리의 결정적인 차이는 당면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인데 이 당면에 단짠맵 소스가 배이면 한 김 식혀 후루룩 먹을 때 밥도둑이 따로 없다. 


 찜닭집에 가면 반찬 따위는 안 나온다. 곁들임으로 나오는 유일한 음식인 치킨무는 무를 직접 잘라 만든 새콤한 그 옛날 치킨무이다. 입안에 불이 났을 때 새콤한 치킨무를 하나 넣어주면 입안이 금세 개운해진다. 그 시절 찜닭집은 쾌적함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학창 시절의 구시장 통닭골목에서 찜닭을 먹으려면 홀이라 봐야 가게의 쪽방 같은 좌식 방에서 먹는 일이 당연한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방문한 고향의 찜닭집과 통닭골목은 시의 관광산업 아이템으로 채택되어 대 변신 중이었다. 바닥이 늘 무언가로 흥건하고 닭냄새가 그득하던 재례식 시장은 천장에 지붕이 생기고 바닥은 깔끔한 타일로 교체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 방문한 찜닭집은 안동시의 지원을 받아 외국인들도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좌식에서 입식으로 대부분 바뀌었다. 


 2000년대부터 안동 찜닭이 안동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이름을 날리고 티브이에서도 연예인들이 안동 찜닭을 먹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언젠가부터 수도권에서도 몫 좋은 먹거리 골목마다 봉추찜닭이며 금계찜닭과 같은 찜닭 프랜차이즈가 보이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찜닭은 안동 찜닭과 달리 당면이 납작했고 치즈 토핑추가나 로제 찜닭 같은 친절한 선택사항들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다른 음식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찜닭이 먹고 싶으면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럼 고모네 상가에 있는 사대부 찜닭에서 다음날 진공포장된 밀키트 형식의 택배가 온다. 배달의 민족으로 주문하면 30분 안에 찜닭을 먹을 수 있지만 나는 하루 이틀을 기다려 안동 찜닭을 먹는 쪽을 택한다. 큰 솥에 진공포장된 재료를 다 때려 넣고 닭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며 나는 '고향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 안동시청 홈페이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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