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데 불안한 나를 위한 처방전
둘째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휴직을 하게 됐다. 막내라 늘 꼬마 같아 보이던 아이는 나의 염려와는 달리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입학 후 얼마되지 않아서 등하교를 혼자 하고 아침마다 오늘의 일정을 먼저 확인하는 모습까지 보여 ‘입학’ 자체가 아이들의 성장에 사다리가 되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침마다 어린이집 안 가겠다며 길바닥에 누워 악다구니를 쓰며 울던 그 녀석이 아니었다. 이제는 두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어 하교 후 돌봄 시스템과 잘만 연계하면 학원에서 태권도차를 타고 귀가할 때까지 출산 이후 내 평생 갖지 못했던 자유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구멍은 어디에나 존재하다 보니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집에 있다가도 뛰어나가는 일이 다반사이다. 아이들의 로드매니저가 되어 날씨에 맞게 우산과 겉옷을 챙겨 달려가고, 병원과 학원으로 나르고 간식을 챙기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도 절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직장생활을 하며 흐린 눈을 하고 스치던 많은 것들이 내 손을 거치게 되어 바쁘다는 표현이 맞겠다. 가족들의 작은 소지품부터 두 아이의 학습까지 챙기다 보면 하교 후부터는 (엄마의 출근 시간) 수면 전까지 엉덩이 붙일 시간 없이 분주히 움직이게 된다. 버거울 때도 있지만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고 지켜봐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이것은 전업주부의 삶인가?’
경주마처럼 삶을 살다 휴직을 해보니 문득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휴직을 한 후 전업주부에 대한 이해와 리스펙이 생기게 되었다. 어릴 적 별명 중 하나가 ‘바깥양반‘이었던 나는 MBTI로 따지면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며 에너지가 솟는 슈퍼 'E'형이다. 사회에서 타인에 의한 인정이나 내가 계획한 목표를 이루는 것에 집중했던 나는 살면서 온전히 가족들을 케어하는 전업주부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이 이어진 후 엄마는 슈퍼우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과 직장에 다리를 한 짝씩 걸쳐놓고 살다 보니 반쪽짜리 엄마이자 직장인이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두 아이를 출산하며 쓴 육아휴직이 고작 도합 3개월이었고, 둘째 아이는 출산 100일째부터 임용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첫째 아이의 입학으로 휴직을 하게 되었을 때 삶의 템포를 잠시 정상화시키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깥양반 기질의 나에게 집안일은 재미가 없었고 누구도 나의 결과물에 별관심이 없었다. 집안일은 해도 티가 크게 안 났고 열심히 한다고 칭찬이라는 피드백을 딱히 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하기 싫었다. 게다가 꼼꼼치 못한 성격 탓에 잘하지도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있으며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으면 괜히 불안할 때가 있었다. 그즈음 나는 자주 되뇌었었다.
‘좋은데, 왜 불안하지?’ 쉬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첫 번째 휴직을 아쉽게 보내고 난 후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휴직을 앞두고 내면을 좀 더 단단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은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정하기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운동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운동 무능력자이자 기피자였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접한 필라테스와 크로스핏을 거치며, 경쟁형 운동 말고 혼자 하는 운동능력은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최근엔 평생의 숙원사업이던 수영을 시작하며 수친자(수영에 미친 자)가 되어 가고 있다. 잘하지는 못해도 평생 재밌게 즐기는 운동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수력 4개월 수린이지만 강습과 자유수영을 즐기며 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다. 날씨가 시원해지면 가볍게 5킬로씩 달리던 안양천 러닝도 다시 해보고 싶고, 여유가 될 때 PT를 받아 몸짱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두 번째는 글쓰기이다. 얼떨결에 시작한 에세이 쓰기 모임이지만 마감이 있는 삶은 결국 나를 쓰게 만든다. 혼자라면 쓰지 않았을 글들을 꾸준히 써보며 브런치에 글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에세이지만 ‘쓰기’의 걸음마를 뗐다는 생각으로 급하지 않게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언젠간 걸음마에서 걷기로, 걷기가 달리기로 이어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쉼’을 무엇인가를 하고 이루는 것으로 해결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본다. 가족과 함께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는 것. 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표정을 내 두 눈에 사진 찍듯 선명하게 담아보는 것. 삶을 멀리서 지켜본다면 이런 것들이 진짜 인생의 쉼표가 아닐까?
심리학에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구렁텅이에 깊게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내가 불안을 느끼면 그것은 ‘불안’ 임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자.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보다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싶다.
주말 나들이에서 찍은 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보내면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 니 인생에서 제~일 좋을 때다!”
아이들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타면 할머니들이 자주 하는 말도 같았다.
“새댁, 좋을~때다!”
나는 지금 좋은~때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