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직장인에게 건네는 위로 한 권
혹시 그림책이지만 아이들이 보기엔 내용이 깊고 페이지 수가 많은 그림책을 접해보신 적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2차 대전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아버지의 이야기로 유명한 아트 슈피겔만의 <쥐>나 HIV 감염인의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푸른 알약>과 같은 책이 떠오르네요.
그래픽 노블은 만화의 틀을 가졌으나 묵직한 주제와 소설만큼 길고 깊이 있는 스토리 라인이 특징적인 책을 말합니다. 단순히 만화책이나 그림책으로 표현하기에는 담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 자체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는 채도 낮은 회색빛이 감도는 느낌의 그래픽 노블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매일이 아슬아슬한 직장인 특유의 내적 공허함을 가득 안고 있습니다.
순수함과 어리숙함이 공존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과, 실적과 결과에 나의 쓰임을 저울질하는 익숙한 나의 모습을 이 책에서 거울 보듯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목: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
저자: 이수연
출판사: 길벗어린이
페이지수: 220면
가격: 25,000원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나'에 대한 고민과 흔들림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이 방향이 맞는 것일까?..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는 이런 질문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작가소개
이수연 작가의 작품 이력을 살펴보니, 유난히 집과 책에 관한 주제로 쓰인 작품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는 실내 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작가가 3년간 가구 파는 일을 하며 겪은 자전적 경험으로 쓰인 내용입니다. 작품에 가구 영업 사원의 일상적 고단함과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직장인의 모습이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는데, 역시나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 됐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주인공인 곰 사원이 언젠가 만난 적 있는 20대의 가구 영업 사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수연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대게 등장인물이 인간이 아닌 동물로 그려져 더욱 재밌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이 책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가구회사의 직장동료는 곰 사원 본인과 개 사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우로 등장합니다.
이 둘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다른 동료들과는 다른 의미의 인물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설정으로 생각됩니다. 작가는 적재적소에 맞는 동물 인물의 내면갈등과 종을 매치해 이야기의 몰입을 높입니다.
특히 곰 사원이 점차 초심을 잃고 변해가며, 닮고 싶지 않던 동료들의 모습과 같은 여우 귀가 돋아난 것을 발견한 장면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초심’에서 벗어난 우리는 간혹 사회 초년생 시절 닮고 싶지 않던 상사의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당황한 곰 사원의 모습이 마치 거울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처럼 낯설지가 않습니다.
줄거리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는 가구 회사의 영업 사원이 곰 사원의 직장 생활 중 겪는 내적 갈등과 자아 성찰을 바탕으로 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반의 곰 사원은 숫기 없고 무능력한 신입 사원 그 자체입니다. 원래 작가를 꿈꿨지만 예술은 돈이 안된다는 생각에 결정한 가구 회사. 곰 사원은 영업과는 먼 인물로 그려지는데,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까 봐 ‘우리 가구는 비싸지만’을 스스로 언급하며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진실됩니다. 이런 곰 사원은 직장에서 무능력하게 취급받지만 점차 인연이 생긴 고객들은 곰 사원의 진가를 알아갑니다. 고객들은 하나둘씩 마음 한구석에 ‘울렁거리고 메슥거리는’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하며 곰 사원의 진실됨에 감동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엔 매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던 곰사원은 어느 날 거울 속 본인의 모습에서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여우와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곰 사원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인상 깊었던 장면
P.147
개는 무언가 달랐다.
이 지긋지긋한 사무실에서도 성실하게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고 있었다.
어떤 때는 그것이 아주 즐겁다는 듯이.
P179.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사실, 정상이 아닐지도 몰라요.
혼란스러운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삶은 모두에게 처음이니까요.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잘 모르겠는걸요.
P.183-184.
나는 심장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놓아야 했다.
진실한 것을 꺼내 놓을수록 더 진실한 관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인생에서 가장 찾고 싶은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내가 하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고
그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고 말해주는 것.
P206. 모두가 다 꿈을 가지고 그 꿈대로 사는 건 아니야.
누군가는 이렇게 나처럼 살아가.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것도
꿈을 꾸는 것만큼,
아름답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
직장 생활을 하며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나는 지금 도대체 어디쯤인지.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 의심하면서 말이에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항상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 궁금증.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현실에 치여 잊곤 하는 그런 마음들을 그저 동심으로 남겨둬야 할까요?
매일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마음 한켠이 불안한 직장인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말이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또 찾아낼 테니까.
그러니까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