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음악 분위기를 많이 타는 여자다.
아침에는 클래식이나 에디하긴스 트리오의 재즈로 기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초대하면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다 말고 레이첼 야마가타가 나을지 카페 음악을 틀지 고민한다. 같이 사는 남자는 아침부터 재즈음악의 베이스 음이 둥둥거려 울린다며 시끄럽다 하는 걸 보니 나만을 위한 고민이었나 싶지만 나는 아침부터 커피를 내리며 에디하긴스를 듣는 여자이고 싶기에 상관없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내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BGM은 무엇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만성 우울에 빠져 죽음을 고민하는 쇠약한 청소년의 아찔한 고민 같지만, 사실 그냥 순수히 개인적인 ‘TPO(장례식장)에 어울리는 선곡’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결혼식 때 신부 입장 음악에 대한 선곡은 고민도 하지 않았는데 장례식장의 BGM에 대해 고민하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사실 드레스 밟고 넘어질까 바들바들 떨며 입장하다 보니 신부 입장 때 어떤 음악이 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택의 융단폭격 수준인 결혼식과 대부분은 고인의 선택보다는 가족들의 손에 선택이 이루어지는 장례식은 비교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저 이 세상 가는 마당에 마지막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으로 플레이하겠다고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나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한 곡 듣는다는 마음으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학창 시절 내가 처음으로 선곡해 놓은 곡은 바로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다. ‘살다 보면 그런 거지, 우후 말은 되지, 모두들의 잘못인가? 다들 모둘 알고 있지 닥쳐!’로 시작되는 나의 청춘 송가. 역시 음악은 음악을 듣던 시대의 순간으로 나를 순간 이동시킨다. 아무래도 후렴구의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부분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원을 만들어 슬램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상상만 해도 해외토픽감이라 생각하며 TPO에 맞는 음악을 선곡한다는 나의 취지에 맞지 않아 탈락이다.
만약 반갑지 않은 이들이 문상을 왔을 때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를 틀고 싶다. (이즈음 되면 장례식장에 디제이 박스라도 넣어줘야겠다.) 하지만 별일이 있기 때문에 ‘별일 없이 간다’로 개사가 필요하겠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나는 별일 없이 간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간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로 고민 없는 세상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떠나는 호상의 기운을 뿜어주겠다. 하지만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생각하니 뭔가 구차해지는 기분이 들어 탈락이다.
다시 돌아와 진지하게 최근 선정한 BGM은 Coldplay의 fix you이다. 이 곡은 보컬 크리스마틴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던 당시 연인 기네스 팰트로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곡으로 ‘치유’에 관한 곡이다.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잃었을 때,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물거품이 되었을 때,
‘I will try and fix you’(내가 널 치유해 줄게)
노래가 건내는 위로에 또 나만 감동받는 거 아닌지에 대한 고뇌가 시작된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coldplay의 음악을 듣고 싶은 여자니까.
이 곡의 또 다른 부분인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네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절대 알 수 없을 거야’란 구절은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이기도 하기에 가족들에게 남기는 유언으로도 적합하겠다.
장례식장에는 눈이 시리도록 밝은 백열등이 아닌 낮은 조도에 테이블마다 작은 조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Coldplay의 fix you가 나오고 벽에 띄운 스크린에 지인들과 찍은 사진들이 한 장씩 지나가도 좋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파파 할머니가 되어 영정사진을 찍어야 하는 타이밍이 오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가족들과 웃으며 나누고 싶다. 내 장례식장의 BGM 선곡은 어느 날 의사가 “마지막을 준비해야겠습니다”는 권유에 정신을 잃고 To do list를 체크하며 해치워나가는 작업이 아니었으면 한다. 적어도 삶을 대하는 자세와 기호가 담겨있는 음악이 내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하길. 그리고 이 플레이리스트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뮤직 리스너 할머니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