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 대해 자주 연구한다. ‘나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누군가 나에게 한량 나르시시스트라 흉볼까 봐, 치기 어린 20대의 술자리에서나 할만한 이야기라 놀릴까 봐, 벌건 대낮에 커피 한잔 하며 식탁에 홀로 앉아 연구를 이어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한수희 작가는 그런 고민의 결과가 나의 ‘스타일’이 된다고 한다. 나아가 그런 과정 자체가 ‘스타일’이지 않냐는 말에 내가 하는 이 고민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한 연구는 내 삶의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이다. 엄마, 와이프, 며느리, 딸, 직장인이라는 여러 배경과 역할 아래에서 나는 주인공이었던 것 같은 삶에서 자꾸 ‘지나가는 사람 1’로 희미해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던 외식은 항상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정하게 되고 개인적인 취향이나 신념은 가정의 평화라는 거대한 목적 앞에서는 한낱 먼지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에 대한 연구는 나라는 사람을 잊지 말자는 신념이자 작은 몸부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록음악이나 인디음악이지만 가족들과 드라이브할 때는 절대 틀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나들이는 뮤직 페스티벌이지만 아이들과는 갈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옷은 사실 좀 더 파격적이지만 괜스레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
이제 솔직해지자. 나는 마흔을 앞두고 있고 다른 사람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이 나이에 두근거리는 로맨스가 갑작스레 펼쳐지거나 매주 구매하는 로또가 1등에 당첨되어 엄청난 부자가 될 일도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몰래몰래 일상 일탈은 꿈꾼다. 친구를 꼬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록페스티벌도 가고 임신한 배를 부여잡고 콜드플레이 콘서트도 간다. 남편에게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를 갑자기 논하며(배달의 민족) 저녁을 패스하고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으로 도망치기도 한다. 페스티벌에서 술에 취해 이상한 옷을 입고 좋아하는 음악 아래서 괴상한 춤을 추며 비틀거릴지언정 나는 그냥 나이고 싶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땐 대한민국 아줌마이자 꼬맹이들의 볼에 얼굴을 비비는 평범한 엄마가 되어있겠지. 깨끗이 몸을 씻고 다시 아이들과 이불에 들어가 장난치며 하루를 마치는 그런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독히 연구하는 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