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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치 May 27. 2022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들여다봐.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에선 낡았지만 깨끗한, 선명한 다홍빛 자동차 한 대가 도로를 끝없이 달린다. 차는 목적지에 설 때를 제외하곤 내내 달린다. 정체되고 꽉 막히지 않은, 뻥 뚫린 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하지만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오도 가도 못한 채 답답할 뿐이다.


차 주인은 연극 연출가 가후쿠. 가후쿠에게 그 차는 자신만의 안전가옥과 마찬가지다. 녹음된 연극 대사를 외우고, 아내가 터뜨릴 두려운 사실과 마주하기 싫어 괜히 운전대를 잡고 주변을 빙빙 돌면서 현실을 피하는 곳. 하지만 빨간 차는 곧 진실의 방이 된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는 아내의 목소리로 녹음한 것이며 그 대사는 가후쿠가 외면하는 그의 현실을 정확히 꼬집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의 중반 이후엔 불륜남이 아내와의 일을 털어놓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한 영화에서 자동차 타고 달리는 장면이 이렇게 많이 나온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분량이 많은 탓인지, 차를 타 생각이 잠긴 가후쿠의 모습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여전히 아른거린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가후쿠와 마사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지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알려준다.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심지어 내 집에서 다른 남자와의 외도 장면을 눈으로 목격했으면서도 티 내지 않는 가후쿠.  그리고 엄마를 죽게 내버려 뒀다는 죄책감으로 마치 벌이라도 받고 있다는 듯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앞만 보고 주행하는 운전사 마사키. 두 사람은 다홍색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 그리고 서로와 마주하게 된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해.
어떤 형태로든 그게 계속되지.

나와 너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야 돼. 괜찮아.
우리는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두 권여 밖에 읽어보질 못했지만 어딘지 모를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고 느꼈다. 오토처럼 수수께끼 같은 말만 가득한 인물이라던가, 후반 클라이맥스가 오기까지 꽤나 인내를 갖고 버텨야 한다는 점 등. 이 영화의 러닝 타임도 무려 3시간을 꽉 채웠다. 길고 긴 영화인 것도 모자라, 프롤로그만 거의 40분 이상이다. 오토가 관계를 가지며 내뱉는 소리는 대체 무슨 말인지, 가후쿠는 왜 오토의 불륜을 목격했으면서도 화를 내지 않는지 머릿속이 뿌옇게 되며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할 때,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된다는 듯 제목과 자막이 나오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는 3시간을 버티길 참 잘 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 가후쿠와 마사키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며 비로소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리던 장면과 이어지는 연극 무대 장면에서 수어로 모든 대사를 말하는 몇 분 동안 고요함과 함께 묵직한 감동이 온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영화엔 여러 형식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오토는 자신만의 소설을 입으로 지어내며 현실의 불륜에 대해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가후쿠는 연출을 맡은 연극 '바냐 삼촌'의 대사를 통해 속마음을 객관화할 수 있고, 오토가 대사를 읽어주던 연극 '바냐 삼촌'의 '소냐' 역할은 말을 할 수 없는 배우 '유나'의 수어로 전달된다. 가후쿠는 바냐 삼촌의 대사를 통해 자신을, 유나는 오토 대신 소냐의 말을 빌려 가후쿠를 위로한다. 이 연극을 바라보며 위로받는 사람은 마사키다.


정말이지 촘촘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모든 게 한 번에 이해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호평을 받는 게 아닐까.

극 중 또 다른 극을 통해 치유받고, 극 중 인물들은 이야기 속 인물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이 영화의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일 지도. 영화 속 인물들인 가후쿠와 오토 또는 마사키, 혹은 유나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다독임을 얻게 된다.







영화에서 빨간 차가 내내 달리는 이유는, 아픔을 뒤로한 채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낡았지만 소중한 '나의 차'를 타고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나아가라고.





DRIVE MY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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