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퇴하지 않았다

정년은 끝났지만 , 나의 시간은 계속된다

by 최국만


나는 퇴직했다.

방송국에서의 30년 넘는 시간을 뒤로하고 조용히 사무실을 나섰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건넸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혔지만, 나는 그 어떤 감정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내게서 하나의 직책이 지워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은퇴하지 않았다.

직장을 떠났을 뿐, 삶에서 물러난 적은 없었다.

명함을 내밀던 손은 사라졌지만, 사람을 향한 내 시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시간은 느려졌지만, 나의 마음은 더 넓어졌고, 이제는 그 시간을 사람을 향해 쓰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은퇴하면 좀 쉬세요.”

하지만 나는 ‘쉼’이 곧 ‘멈춤’이라는 뜻이라면, 그 어떤 순간에도 쉬지 못했다.

나는 퇴직 후 장애인활동지원사라는 전혀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다.

교감이 쉽지 않은 지적장애인을 돕는 일은, 내가 살아온 방송 현장보다 더 깊고 고요한 세계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 눈빛과 몸짓 속에 담긴 감정은 생생했고, 나는 그들과의 시간 속에서 ‘진짜 사람’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 삶은 오직 하나, 도전이었다.

누구는 삶을 고통이라 하고, 고해의 연속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 고통과 고해의 길을 나의 전부로 받아들였고, 결국 그것이 나를 성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그 어려운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30년 넘게 제작할 수 있었다.

수많은 진실과 마주하면서도 꺾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길을 믿고 걸었기 때문이다.


은퇴의 순간에도 나는 “이제 좀 쉬자”라는 생각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자”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장애인활동지원사였고,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고된 일이었지만,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과 정확히 닮아 있었다.

낯설고 어려운 길일수록 나는 더 깊이 걸어 들어가야만 직성이 풀렸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은퇴란 생의 닫힘이 아니라,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뜻이라고.

퇴직이 내게 허락한 것은 ‘멈춤’이 아니라 ‘전환’이었다.

그리고 그 전환의 중심에는 오직 하나,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은퇴 후 나에게 가장 크게 확장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유의 능력’이다.

더는 일에 쫓기지 않고, 누군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으며, 나는 하루를 온전히 ‘생각하는 일’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사람은 왜 늙고 병드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천천히 되짚는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철학하는 삶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묻는 삶이다”라고 했다.

그 물음이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살아 있다는 뜻이고, 사유는 곧 존재의 증거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


불교 『법구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남을 이기는 자는 강한 사람이지만, 자신을 이기는 자는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이제야 그 말의 깊은 뜻을 안다.

퇴직 후의 고요한 시간은 나를 세상과 경쟁에서 이기려는 사람이 아닌, 내 안의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비로소 진짜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느낀다.


나는 오늘도 사유한다.

삶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용히 묻는다.

그 질문은 끝나지 않기에, 나의 삶 또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곁에서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쓰고 있으며,

여전히 내 안에서 삶을 기획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은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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