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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 남은 아버지의 뒷모습

새벽 눈 길을 걸어간 그날, 신앙과 사랑의 자국이 남았습니다

by 최국만


아침에 눈을 떴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온통 하얬다.

하룻밤 사이에 눈이 내렸고, 세상은 온통 밝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눈이 오면 포근하다고 했는데…”

하지만 제법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 풍경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된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기독교 신자였고, 부모님의 신앙은

한국전쟁 이후 인하대학교 내 북한이탈주민 수용소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아버지는 북에서 내려온 후 민간신앙인 미신에 젖은 가정에서 자라셨지만,

전쟁 통에 폐결핵이 돌아 많은 이들이 쓰러질 때

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구호소에서 신앙을 만나셨다.

그곳에서 제공한 음식과 기도, 찬송은

부모님의 삶을 구했고, 그들의 믿음이 되었다.


그날 아침,

아버지와 둘째 형, 그리고 나는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 눈 덮인 길을 나섰다.

나는 겨우 일곱 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덜덜 떨며 걷고 있었다.


아버지가 앞장서 걷고,

그 뒤로 형과 내가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눈 위에 찍히는 아버지의 발자국,

그 발자국을 따라 걷는 우리 형제,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아버지의 등을 바라봤다.

그 뒷모습이,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 되리라고는

그때는 몰랐다.


그 눈 위의 길은 단순한 교회의 길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신앙이 이어진 믿음의 행렬이었다.


교회에 도착해 찬송을 부르고 선물을 받았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아버지는

그날따라 더 평온했고, 집중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흘깃흘깃 바라봤다.

그 따뜻한 눈빛, 조용한 아멘, 그리고 손에 쥔 헌금 봉투…

그 장면들이 내 가슴에 깊게 스며들었다.


아버지는 71세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도

세상 누구보다 성실하고 고생만 하셨던 분이다.

직장생활을 하실 때 월급을 타시면

항상 십일조 헌금을 위해 새 돈으로 바꿔 헌금하시던 분.

글을 좋아하고, 한자에 조예가 깊으셨던 그 아버지.

어쩌면 지금의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분의 피가 흘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나이 67세.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내의 암투병 중인 지금 이 시기에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버지,

오늘은 유난히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립니다.

그 눈길 속 발자국,

그 위에 남겨진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 흔적을 따라

나 역시 평생을 걸어왔습니다.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처럼,아버지의 사랑은 내 삶에 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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