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서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최국만


오늘은 12월 31일이다.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말이

괜히 마음을 낮추게 만든다.


은퇴 이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누군가에게 급히 증명할 일도,

어디로 서둘러 갈 이유도 없어진 시간.

그만큼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잠시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 곁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하루를 무사히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이해하던 시간들.

아내는 늘 그렇듯

앞에 나서기보다는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의 속도가 아니라

생각의 속도로 살아가던 나,

문장을 고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던 시간들.

비워두었던 책상 앞에

다시 앉게 된 것도

이 공간 덕분이었다.


그 모습을

아내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괜히 묻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그저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을

존중해 주었다.

그 배려 덕분에

나는 다시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이 읽어주셨기에

나는 다시 쓰게 되었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곁에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남기고 싶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잘한 일보다

버텨낸 날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내와 함께였기에

그 버팀은

외롭지 않았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올해의 자신을

너무 엄격하게 평가하고 있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조금 너그러워지셔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애써왔다.


내일은 새해다.

무언가를 크게 바꾸지 않아도 좋다.

다만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는 마음,

다시 생각하고

다시 나누고

다시 사람을 향할 수 있는 용기만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시작이라고 믿는다.


올 한 해,

이 공간에서 함께 머물러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도

이 글을 빌려

감사를 남깁니다.


오늘,

12월 3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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