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라는 말의 무게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by 최국만


서울아산병원의 로비는 언제나 계절을 잊은 채 분주하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한강이 보이지만,

이곳에 발을 들인 이들에게 풍경은 사치에 가깝다.


나 역시 아내의 손을 꼭 쥔 채, 전광판에 흐르는 이름들 속에서

우리의 순례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지난 몇 주간 우리 삶을 짓눌러왔던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이곳에 왔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의사의 무심한 듯 명료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아주 깨끗하네요.”

그 한마디는 지난밤 잠을 설치게 했던

온갖 불길한 상상들을 단숨에 씻어냈다.

아내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공기가 그제야 흩어졌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손을 한 번 더 꽉 쥐었다.

진료실을 나오며 마주한 복도의 공기는 아까보다 훨씬 달콤하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이들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즉시 소식을 타전했다.


“엄마 결과 나왔다. 아무 이상 없단다!”

메시지를 보낸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아이들에게서 답장이 쏟아졌다.

“아빠, 엄마! 정말 다행이야. 너무너무너무 기뻐요!”


화면 가득 채운 ‘너무’라는 단어의 반복과 느낌표들.

그 짧은 문장 속에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지,

얼마나 간절히 이 소식을 기다려왔을지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너무너무너무 기쁘다”는 그 말.

사실 그 말은 오늘 아침 눈을 뜰 때부터,


아니 검사를 예약한 그날부터 내가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그리고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법 같은 주문이었다.

멀리서 소식을 기다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액정을 넘어 내 가슴으로 뜨겁게 전해졌다.


하지만 기쁨의 여운을 안고 병원을 빠져나가는 길,

내 발걸음은 다시 한번 멈춰 섰다.

로비 대기석에 앉아 있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암 센터 복도,


초조하게 번호표를 쥐고 바닥을 응시하는 중년의 사내,

환자복 위에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노인,

그리고 그 옆에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죽을 떠먹이는 보호자들.

그들의 얼굴 위로 조금 전까지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방금 우리가 받은 ‘이상 없음’이라는 성적표는

누군가에게는 생을 걸고서라도 얻고 싶은 기적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의 복귀가,


저들에게는 오늘 밤 눈물로 구해야 할 간절한 소망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병원을 나서는 길, 차갑지만 맑은 겨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마음 한구석에는 안도감이,


또 다른 한구석에는 이름 모를 이들을 향한 미안함이 공존했다.

내가 누리는 이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딛고 서 있는 연약한 존재들임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 우리 가족이 나눈 기쁨의 크기만큼,

저 긴 복도 끝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다른 이들에게도 ‘다행’이라는 소식이 닿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 “아무 일 없다”는

안부를 전해 듣는 그 평범한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을,

아산병원의 높은 천장 아래서 배우고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의 손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하다.


3월, 다시 시작될 우리의 봄

이번 결과가 더 특별한 이유는

다가오는 3월이 아내의 환갑이기 때문이다


큰 병을 치르고 맞이하는 예순 번째 생일.

우리는 이번 3월에 '힐링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아픈 시간을 견뎌낸 아내의 몸과 마음을

정성껏 보살피는 시간이 될 것이다.

거창한 계획은 없다.


그저 좋은 공기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우리가 함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고생 많았어, 여보.


당신의 환갑은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봄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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