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바꾼 우리의 시간
나는 촌닭처럼 사랑해 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자 아내도 어느덧 그 촌닭의 사랑법과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내 방식이 투박하고 느리고 촌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이벤트도 없고 번쩍이는 수사도 없었다.
늘 흙 묻은 손, 마당의 바람,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시작되는 하루였다.
그러나 시간은 사람을 설득하고, 병은 사람을 깊게 바꾼다.
특히 암 투병 이후의 아내는
마치 오래전부터 촌닭이었던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오늘의 볕을 귀하게 여기고,
서둘러 달리기보다 계절의 속도를 따르며,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자기 몸의 리듬을 듣는 법을 배웠다.
아침이면 창밖 하늘을 먼저 바라보고
마당의 흙길을 천천히 걷는 모습이,
꼭 촌닭이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제 생을 지키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촌닭은 흙을 쪼고 벌레를 찾으며 스스로를 살린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몸을 낮춘다.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는 동안에는 거의 먹지 않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거기에는 계산도 연출도 없다.
그저 생명이 생명을 지키는 침묵의 윤리만 있을 뿐이다.
나는 그 태도를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스스로를 촌닭에 빗대어 사랑한다고 말해 왔다.
장미 백 송이 대신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내밀었고,
화려한 여행 대신 들길을 함께 걷는 쪽을 택했다.
기념일보다 일상을 붙들었고, 말보다 행동을 앞세웠다.
흙을 떠나지 않는 촌닭처럼 현실을 떠나지 않았고,
햇볕을 품는 촌닭처럼 하루를 품으며 살아왔다.
최근 아산병원 검진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환호 대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살아 있음이 당연히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을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요즘 아내는 스스로 운동을 챙긴다.
무리하지 않되 매일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마치 촌닭이 먹이를 쪼아가며 제 몸을 지키듯,
자기 삶을 조용히 돌보고 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오는 7월, 다시 검진을 받기로 한 것이다.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검진은 공포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한 걸음이라는 것을.
이 지점에서 나는 불교의 말을 떠올린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하고 머무르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를 절망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살게 만들었다.
영원한 안전이 없기에 오늘의 숨이 더 소중하고,
완벽한 건강이 보장되지 않기에
함께 걷는 지금이 더 깊어졌다.
병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서로를 더 단단하게 잇는 끈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촌닭의 느린 리듬을
삶의 철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아내는 더 이상 단순한 환자가 아니다.
그는 촌닭처럼 살아 있는 사람이다.
흙을 밟고, 공기를 마시고, 볕을 품으며
오늘을 온전히 사는 사람이다.
내가 촌닭처럼 사랑했기에,
아내도 촌닭의 사랑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사랑법이 지금 우리를 살리고 있다.
도시는 빠른 회복과 강한 삶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천천한 회복과 부드러운 삶을 택했다.
마당을 걷고, 들길을 걷고,
서로의 발걸음을 맞추며 계절을 건너왔다.
나는 여전히 촌닭이다.
흙을 밟고, 햇볕을 맞으며
하루를 온몸으로 산다.
그리고 촌닭처럼 사랑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촌스러워 보여도 괜찮다.
우리의 사랑은
흙에서 태어났고,
공기 속에서 자랐으며,
시골의 볕 아래에서 단단해졌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말한다.
나는 촌닭처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고,
앞으로의 여름과 가을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