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과 촌닭, 흙을 밟고 사는 것들의 생명력

by 최국만


시골 마당에서 방사하여 기르는

닭들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란 본래 저토록 자유로운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담장 없는 시골 흙 위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볕 좋은 날에는 날개를 펴고

온몸으로 햇살을 맞이하는 촌닭들.

그들에게는 누군가가 정해준 시간표도, 가두는 울타리도 없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거닐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을 낳을 뿐이다.

반면 좁은 닭장에 갇혀 사육되는

닭들은 생명 본연의 활기를 잃어버린다.

발바닥에 닿는 폭신한 흙도,

폐부 깊숙이 박히는 싱그러운 공기도,


눈부신 태양도 경험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알을 내놓는다.

그들이 촌닭보다 병치레가 잦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흙을 밟지 못하는 생명은

뿌리 뽑힌 나무처럼 시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며 사는 '촌놈'인

나 역시 그 촌닭들을 닮아 있다.

나 또한 흙을 만지며 숨을 쉬고,

시골의 볕 아래서 몸을 움직이며 산다.

아내와 나란히 서서 텃밭의 잡초를 뽑고,


밭두렁에 앉아 땀을 식히며 나누는 무심한 말 한마디.

약속된 것 없는 오후의 평화로운 햇살 아래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도시의 속도에 맞춰 사는 사람들은 이 기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촌놈은 안다.

억지로 삶을 쥐어짜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순리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방식인지를 말이다.

촌놈은 이른 봄이 오면 묵은땅을 간다.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은

흙을 뒤집으며 정성껏 씨를 뿌린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가을의 풍요가 온다는 것을

대지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촌닭들 역시 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부지런히 마당을 누비며 살을 찌우고,

온 정성을 다해 알을 품는다.


갓 깨어난 병아리를 돌보느라

먹이 한 톨조차 함부로 삼키지 않는

그 지극한 정성은 텃밭을 가꾸는

농부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촌놈은 촌닭을 닮고,

촌닭은 촌놈을 닮았다.


둘 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읽어낼 줄 알고,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알며,

모든 결실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것이 내가 발붙여 사는

농촌의 풍경이자 나의 삶이다.


나는 이 땅 위에서 촌닭처럼 자유롭고,

촌놈처럼 정직하게 살아가려 한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는 삶,

자연이 주는 대로 받고 땀 흘린 만큼 거두는 삶.

방사된 닭이 담장 밖을 유유히 거닐듯,


나 또한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촌놈의 자부심으로 흙을 일군다.

흙을 밟고 사는 생명의 건강함,

이보다 더 근사하고 당당한 삶의 방식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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