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화산의 약속을 지키러 갑니다, 당신의 예순을 축하하며
우리는 함께 마흔 해를 살았다.
아내는 부모님의 품에서 스무 해를 자랐고,
스무 살 청춘에 고향을 떠나 대학에서 나를 만났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시간이 어느덧 40년이다.
이제 아내에게는
나를 낳아준 부모와 산 날보다
남남으로 만나 짝이 된 나와 살아온 날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3월, 아내는 예순이 된다.
7년 전, 중국 화산의 험준한 정상에서
아내는 나의 환갑을 축하해 주었다.
숨 가쁘게 올라간 그곳에서 아내가 펼쳐 든 현수막을 보는 순간,
내 마음엔 기쁨보다 한 여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먼저 밀려왔다.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가 보여준 그 마음 앞에서 나는 다짐했다.
'당신의 환갑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날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그 약속의 날이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 1년은 우리 가족에게 '조용한 폭풍' 같았다.
아내에게 찾아온 암이라는 불청객.
수술과 방사선, 이어진 약물치료까지...
우리는 긴 말 대신 서로를 더 오래, 더 깊이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다행히 최근 검진에서 "이상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한마디는 우리 가족에게 다시 봄이 찾아왔다는 신호였다.
가슴 한구석에 미뤄두었던 환갑 계획을 다시 꺼낸 것도 그때였다.
요즘 사람들은 말한다.. "백세 시대에 환갑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장수를 축하하는 유일한 날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아내의 예순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스무 살에 만나 마흔 해를 오직 가족을 위해 살아낸
한 사람의 시간을 온 마음 다해 존중하는 날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아내는 그 본능을 넘어선 헌신으로 세 아이를 당당한 어른으로 키웠다.
나는 그 숭고한 시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다.
아이들이 먼저 마음을 모았다.
"아빠, 우리 여행 가요. 이집트는 어때요?"
낯선 땅, 긴 비행시간에 아내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세계를 누비며 제 길을 찾은 아이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엄마, 우리가 있잖아요. 천천히 쉬면서 같이 걸어요."
여러 후보지를 두고 오가던 대화 끝에 어느 주말 저녁, 아내가 나직이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 이집트 가자."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보다 가족과 함께하고픈 간절함이 더 크게 담겨 있었다.
나에게 아내의 환갑은 시간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함께 견뎌온 세월을 경배하는 날이다.
아픈 터널을 지나 다시 여행을 꿈꿀 수 있다는 것,
같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같은 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평범한 일이 얼마나 눈부신 기적인지 우리는 이제 안다.
3월 20일 저녁 6시 30분, 우리는 카이로로 떠난다.
누군가는 너무 먼 길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거리는 떨어져 있던 거리가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걸어온 40년 세월의 길이다.
예순이라는 나이는 삶이 저무는 표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함께 멀리 갈 수 있다는 증명이기에.
이번 여행은 축하를 넘어선 감사의 고백이며,
아직 우리에게 함께할 '내일'이 남아 있다는 가장 벅찬 설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