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지나 다시 삶의 장단을 맞추다
화요일 아침이면 아내는 조금 분주해진다.
평소보다 옷을 한 번 더 고르고, 가방 안을 다시 들여다본다.
물병과 작은 수첩, 그리고 접힌 악보 한 장.
민요 수업에 가는 날이다.
사실 아내가 민요를 처음 배운 것은 괴산에 내려오고 나서였다.
자연 가까이에서 살면, 언젠가는 우리 소리를 배워보고 싶다던 사람.
그러다 병원 건강센터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하루가 모자랄 만큼 바빠졌고
그 배움은 또다시 미뤄졌다.
아내의 인생에는 늘 그런 식의 “나중에”가 많았다.
우리는 대학 시절 교지편집위원으로 처음 만났다.
밤늦도록 원고를 붙들고 토론하던 그 사람은
글을 잘 썼고, 그림도 잘 그렸고,
손으로 만드는 일에는 못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스물셋에 엄마가 되었고
아이 셋을 키우며 직장을 27년 동안 다녔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재능과 취미는
늘 가족과 일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퇴직 후, 이제는 정말 자기 시간을 살아도 되겠다 싶던 때
병이 먼저 찾아왔다.
암이라는 이름은 우리 삶의 속도를 한순간에 멈춰 세웠다.
지난 2년은 병원 복도와 검사실, 회복의 시간을 오가며 흘러갔다.
나는 곁에 있었지만
그 고통을 대신 견딜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을 지나
아내는 다시 민요를 배우러 간다.
민요는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든다.
목에 힘을 주고, 배로 숨을 밀어 올리고,
장단에 맞춰 몸을 실어야 한다.
진도아리랑, 남원산성…
아직 수준급은 아니지만
아내는 장단을 따라 몸을 유유히 움직이며
끝까지 한 소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본 적이 있다.
노래를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는 민요 전수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국악의 전문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않고 해 보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 취미는
아내의 몸에 다시 생기를 돌게 하고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수업을 다녀온 날이면 얼굴이 달라진다.
“오늘은 장단이 조금 맞았어.”
“선생님이 소리가 깊어졌대.”
아이처럼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가끔 생각한다.
저 사람은 평생 우리 가족의 울타리였는데
이제야 자기 목소리로 세상을 울리고 있구나.
우리 집 화요일 저녁에는
아내의 민요가 잔잔히 흐른다.
그 소리와 장단이
앞으로 더 깊이, 더 멀리
아내의 내면까지 울려 퍼지기를
나는 조용히 기다린다.
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