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긴 매화

고목에도 꽃은 핀다

by 최국만

아내가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올겨울부터는 본격적으로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내는 괴산읍사무소로 간다.

그곳에서 이웃들과 두 시간을 보낸다.

그 두 시간 동안

아내의 손끝에서는

나무가 자라고,

곤충이 날아들고,

꽃이 피어난다.


처음 만난 자수의 세계에

아내는 조용히, 깊이 빠져들었다.




어느 날 저녁,

퇴근해 현관에 들어서자

아내가 나를 불렀다.


“여보, 아이패드 좀 줘봐요.”


각자 기기가 있는데

굳이 내 것을 찾는다.

고장이라도 났나 싶어

의아한 마음으로 건넸다.


아내는 서랍에서 파우치 두 개를 꺼냈다.


감색 천 위에

매화가 흐드러져 있었다.


하나는 내 아이패드 파우치,

다른 하나는 필기도구를 넣는 가방이었다.


아내는 안구 건조증 때문에 늘 인공 눈물을 넣는다.

그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를 꿰었을 생각에 가슴이 저릿했다.


“여보, 그 눈으로 힘들게 뭘 이렇게 만들었어?”

“당신 주려고, 배우면서부터 생각했지.”


파우치 속 매화나무를 가만히 바라본다.

길게 뻗은 가지, 곧게 솟은 줄기, 그리고 수줍은 봉오리.

그 나무에는 아내의 인고(忍苦)까지 수놓아져 있다.


아내는 아직 완전히 회복된 몸이 아니다.

수십 번의 항암 치료를 버텨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아내는 내색하지 않았다.

작년 8월, 치료가 끝날 때까지도 그랬다.


그런데도 아내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내 출근 밥상을 차렸다.

나는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내 심연 깊은 곳의 솔직한 고백이다.


매화나무는 고목이 되어도 꽃을 피운다.

소임을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듯,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뜨거웠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우리는 또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간다.


아내는 천에 수를 놓은 게 아니다.

나의 메마른 마음 위에 정성을 새긴 것이다.

한 땀 한 땀, 사랑을 새겨 넣은 것이다.


꽃은 언젠가 지겠지만,

이 매화는 시들지 않는다.

파우치 위에 맺힌 아내의 시간을 조용히 만져본다.

오늘, 나는 아내의 생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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