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줄이자 비로소 보이는 얼굴들

by 최국만


단양으로 가는 길,

우리는 조금 느려지기로 했다.

빠른 중앙고속도로 대신 굽이굽이 이어진 국도를 택했다.

주말의 화창한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길은 나에게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록 저장소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취재차 단양과 충북 북부 지역을 제 집 드나들듯 오가던 길.


충주호를 따라 휘어지는 그 길목마다

젊은 날의 내 현장과 얼굴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겨울의 길은 잠잠했으나, 나는 알고 있다.

봄이 오면 이 길이 아무 말 없이 얼마나

눈부신 꽃들을 쏟아내던 곳이었는지.


예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그 길을,

이제는 아내와 함께 천천히 지나간다.

속도를 줄이니 비로소 그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조수석에서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늘 모임에서 만날 사람들에게 줄 수세미다.

아내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 마음이 먼저 나가 닿을 뿐이다.

아내 역시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님에도,

누군가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그 손길이 고요하고도 따뜻했다.



약속 장소인 단양의 한 식당에 도착했을 때,

미색 점퍼를 입은 한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받고서야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못 알아본 것이 아니라,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1년 전만 해도 구릿빛 피부에 다부진 체격이었던 후배는,

말보다 몸이 먼저 무너져 내려 있었다.

20년 전, 단양군청 기자실에서 처음 만났던

그는 누구보다 집요하고 단단한 기자였다.


현장을 가리지 않고 뛰던 그 청년이 어느덧 예순이 되어,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언론인은 수명이 짧다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밤을 새우고, 마감을 넘기고, 몸보다 일을 앞세우며 살았던 시간들.


그 훈장 같던 치열함이 이토록 가혹한 청구서가 되어 돌아올 줄은

그때의 우리 중 누구도 몰랐다.

다섯 부부가 모였지만, 식탁 위의 공기는 무거웠다.

아픈 아내를 배려해 정한 담백한 회 한 점에도 후배는 손을 대지 못했다.


된장찌개 속 두부를 물에 씻어 먹는 그의 마른 손마디를 보며,

좌중의 젓가락질은 점점 느려졌고 말수는 줄어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잡아두었던 다음 일정 몇 개를 지웠다.

지금은 더 멀리, 더 빨리 갈 때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송, 후배는 신문. 매체는 달랐어도

우리는 같은 시대를 통과해 온 동지였다.

데려온 병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나갈지는 선택할 수 있었다.



헤어질 때 나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또 보자."

그 짧은 인사 속에 담긴 간절함을 그도 읽었을까.

돌아오는 길, 아내가 조용히 곁을 내주며 말했다.

“여보, 집에 가서 염분 줄인 반찬 좀 만들어서 다시 가볼까.


이럴 때는 누군가 곁에 있는 게 정말 큰 힘이 되잖아.”

자신의 몸도 다 추스르지 못한 아내가 타인의 빈 식탁을 먼저 걱정한다.

그 마음이 고마워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간 내서 같이 가자.”

단양에서 괴산으로 돌아오는 길,

늘 아름답던 그 길이 그날은 유난히 멀고도 깊게 느껴졌다.


아마 우리는 이제 예전처럼

빨리 가는 삶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대신 조금 더 주변을 살피고, 조금 더 천천히 걷게 될 것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나는 다시 이 길을 지날 것이다.

그때도 오늘 마주한 얼굴들이 조용히 떠오를 것이다.


그 얼굴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속에 하나하나 눌러 담으며 가는 길.

그것만으로도 이 길은,

그리고 우리의 남은 생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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