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의 정의감, 파출소 문을 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뛰어왔다.
해는 거의 기울어가고 있었다. 다섯 시쯤 되었을 것이다.
대문을 열자마자 소리쳤다.
“엄마, 배고파. 밥 줘요.”
방문을 열었다.
어제와 같은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둥글게 앉아 화투를 치고 있었다.
“내가 이겼어 “
“ 50원 나한테 더 줘”
바닥에 흩어진 화투장이 요란하게 뒤집혔다.
“엄마, 밥 줘.”
이번에는 짜증이 섞였다.
그러나 엄마도, 옆에 앉은 아주머니들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모두 화투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엄마, 왜 맨날 화투만 해?
왜 아주머니들은 우리 집에서만 화투를 쳐?”
엄마가 힐끗 나를 보며 말했다.
“국민아, 조금만 기다려. 세 판만 치고 밥 줄게.”
화투 한 판은 길어야 5분이었다.
나는 15분을 기다렸다.
세 판이 끝났는데도 화투는 계속되었다.
배에서는 소리가 났다.
결국 나는 주방으로 가 밥통을 열고 찬밥을 퍼 담았다.
찬물에 말아 허겁지겁 먹었다.
그날 화투는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는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엄마, 이제 화투 좀 그만해.
어떻게 매일 그렇게 화투를 쳐?”
엄마는 피곤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일부터 안 칠게.
자꾸 심심하다고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놀자는데 어쩌겠니.”
그 당시 화투는 ‘민화투’였다.
아마 10원짜리였을 것이다.
1970년대, 주부들에게는 부업도 취미도 변변치 않았다.
집과 아이,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
화투는 그들에게 작은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 내게 그것은
‘엄마를 빼앗아가는 것’이었다.
형들은 달랐다.
“엄마가 심심해서 하는데 왜 그렇게 심술이냐.
배고프면 네가 찾아 먹으면 되지.”
형들의 말은 늘 어른 편이었다.
나는 늘 혼자였다.
다음 날.
방문을 열었다.
또 하고 있었다.
그날은 일찍 끝났다.
나는 밥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내가 반드시 파출소에 신고하겠다.’
어린 내게 그것은 정의였다.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이 ‘잘못’을
내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
‘내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신고할 수 있다.’
나는 혼자 특단의 결심을 준비했다.
“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서
다 벌을 받게 하겠다.”
아주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자
방 안을 채우던 화투장의 소리와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왁자지껄하던 공간이 텅 빈 것처럼 조용해졌다.
마치 동네 전체가 숨을 멈춘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분명 내일도 하겠지.
내일은 파출소에 신고해서 혼나게 해야지.’
이불을 덮고 누웠지만
가슴은 콩당콩당 뛰었다.
괜히 신고했다가 엄마가 감방이라도 가면 어떻게 하지.
동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혹시 나 때문에 집안이 더 어려워지면 어쩌지.
어린 마음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침에 학교를 가면서도
머릿속에는 그 한 문장만 맴돌았다.
‘정말 신고할까, 말까.’
내가 바란 것은 거창한 처벌이 아니었다.
경찰이 와서 한번 혼내주고,
다시는 못하게 하고,
벌금 조금 내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수업 시간 내내
나는 칠판 글씨 대신 파출소 문을 떠올렸다.
‘신고할까, 말까.’
‘이건 큰일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아냐, 한 번은 끊어야 돼.’
갈등과 결심과 혼돈이
어린 나를 휘저었다.
결국 파출소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래, 가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저씨, 신고하러 왔어요.”
경찰관이 나를 쳐다봤다.
“신고? 무슨 신고를 해?”
“네,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제가 학교 가면 아침부터 모여서
밥도 안 주고 화투를 해요.”
경찰관이 크게 웃었다.
“허허허, 이놈 참 대단하네.
몇 학년이냐?”
“2학년입니다. 광성중학교 다닙니다.”
경찰관은 일부러 겁을 주듯 말했다.
“신고하면 네 엄마도 감방 가야 하는데, 그래도 할래?”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바라는 건…
직접 가셔서 혼내주시면 돼요.
그리고 제 신분은 보호해 주세요.”
경찰관은 또 웃으며 말했다.
“이 놈 맹랑하네.
너 이다음에 뭐 되고 싶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차가 우리 동네로 향했다.
나는 멀찍이 숨어 지켜보았다.
잠시 후
엄마를 포함한 아주머니 네 명이
경찰차에 타고 파출소로 갔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는 척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했다.
“엄마 어디 갔냐?”
“몰라요. 제가 학교 갔다 왔는데도 없던데요.”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쯤 뒤 엄마가 돌아왔다.
“아니, 경찰이 우리가 화투 하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다 파출소에 끌려가 조사받고 왔어.”
아버지도, 엄마도
설마 내가 신고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우리 동네의 화투판은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그래, 우리가 너무 잘못했지.
국만이 가 오죽하면 자기 엄마를 신고했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후련함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파출소 문을 밀고 들어간 그 아이는
단순히 배가 고팠던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부조리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정,
잘못된 것을 보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집요함,
그 기질이 이미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화투판을 끊겠다고
경찰서를 찾아간 중학생은
훗날
카메라를 들고 밀렵꾼을 쫓고,
불법을 고발하고,
가짜를 파헤치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나는 어쩌면
그날 이미
프로듀서의 길을 선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배고픔에서 시작된 신고는
결국 내 삶의 방향을 예고하는
첫 번째 고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