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산, 그리고 멈추지 않은 목소리
그 암자는 단순한 수행처가 아니었다.
산비탈을 따라 작은 밭들이 이어졌고,
그곳에서는 약초와 한약재가 자라고 있었다.
산이 맑아야 약이 맑다고 믿는 스님은
농약 한 번 쓰지 않고
산의 흙과 바람과 물로 약초를 길렀다.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석면이 나왔다.
그리고 스님은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우리를 불렀다.
암자를 삼킨 불
취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밤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PD님… 암자에 불이 났습니다.”
달려갔을 때
암자는 이미 잿더미였다.
나무 기둥은 검게 타 무너졌고
스님이 말없이 돌보던 약초밭도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방화였다.
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스님은 한동안
임자 없는 빈집을 전전하며 지냈다.
산을 지키던 사람은
산에서 쫓겨난 신세가 됐다.
나는 그날 밤
취재수첩을 덮지 못했다.
환경 문제는 자연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
권력과 이권을 건드리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뼈저리게 알았다.
취재는 전국으로 번졌다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었다.
충주, 제천을 시작으로
단양, 공주, 청양…
전국의 채석장과 폐광산, 광산 인근 마을을 돌았다.
주민들의 공통된 증언이 이어졌다.
“기침이 멈추질 않아요.”
“숨이 차서 농사도 못 짓겠어요.”
“병원에 가면 원인을 모른다고 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던 노인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장면이 방송을 타자
전국이 들끓기 시작했다.
방송 이후의 파장
방송이 나간 뒤
전화가 쏟아졌다.
비슷한 피해를 겪고 있다는 제보가
전국에서 이어졌다.
환경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연합이 현장 조사에 합류했고
전문가들이 토양과 공기 시료를 채취했다.
결국 스님은
국회 청문회 자리에까지 서게 되었다.
수십 년 산을 지켜온 산중 스님이
정장 입은 국회의원들 앞에서 말했다.
“산이 병들면 사람도 병듭니다.”
그 말은 회의장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부의 대책, 그리고 허탈함
정부도 움직였다.
“토양 개선 사업”이 시작됐다.
대형 장비가 들어오고
흙을 퍼내고 새 흙을 덮는 공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지켜봤다.
제대로 된 석면 제거 기준도 없이
겉흙만 뒤집는 ‘보여주기식’ 작업.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지만
본질은 건드리지 못한 채
먼지만 더 일으키는 공사였다.
나는 카메라 뒤에서 중얼거렸다.
“산은 치료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데,
반창고만 붙이고 있구나.”
스님은 돌아왔다
암자는 다시 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님은 산으로 돌아왔다.
불탄 터 옆에 작은 컨테이너를 놓고
다시 약초를 심기 시작했다.
“산이 나를 키웠는데
내가 산을 버릴 수는 없지요.”
그 말은
어떤 정책 보고서보다 강했다.
우리가 남긴 것
이 취재는
시청률로만 보면 ‘성공한 방송’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은 건 숫자가 아니다.
불탄 암자 냄새
재 위에 떨어지던 빗방울
국회에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던 스님의 모습
그리고
“산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던 그 한마디.
환경 문제는 끝난 적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잊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한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