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띠를 본 날
전국이 석면 공포에 휩싸였던 해였다.
지하철 역사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오래된 건물 천장에서
하얀 먼지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졌다.
석면.
불에 타지 않고, 잘 부서지지 않으며, 값도 싸
한때는 ‘기적의 광물’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 가느다란 섬유가 폐 깊숙이 박히면
10년, 20년의 잠복기를 거쳐
사람을 조용히 죽음으로 데려가는 물질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악성중피종.
숨이 차고, 가슴이 조여 오고, 이유 없이 체중이 줄고,
마른기침과 열, 오한이 이어지는 무서운 병.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암이었다.
그해 우리 시사팀도
석면의 실체를 추적하는 기획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일제의 지도에서 시작된 취재
자료 조사를 하던 후배가 말했다.
“선배님, 조선총독부가 만든 광맥 분포도 자료를 찾았습니다.
충북 충주, 제천 일대에 석면이 분포돼 있다고 나옵니다.”
프린터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던 자료.
크라운판 400쪽.
일제는 이미 100년도 전에
우리 산과 땅속 광물 자원까지 샅샅이 조사해 두었다.
지역, 매장량, 광물 종류, 갱도 위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들의 치밀함 때문이 아니라
이 자료가 지금 우리 국민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충북, 특히 충주와 제천.
지도 위에서 석면 광맥이 가장 짙게 표시된 곳이었다.
숲속 암자에서 걸려온 전화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천 수산의 작은 암자 스님입니다.
절 아래 채석장에서 캐낸 돌에 하얀 띠가 선명합니다.
석면 같아요. 우리 암자를 지을 때도 이 돌이 많이 나왔습니다.”
환경 프로그램을 오래 했지만
솔직히 석면은 나에게도 낯선 영역이었다.
전문가가 필요했다.
마침 석면 분석 연구소가 서울에서 충주로 이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구소 소장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무료로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시료를 채취해 오셔야 합니다.”
나는 곧장 물었다.
“시간 되시면… 현장까지 같이 가실 수 있을까요?”
그는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방송의 생사를 가르는 추진력이 발휘됐다.
채석장과 암자
채석장은 쉬는 날이었다.
우리는 정문 대신 산길을 따라 암자로 향했다.
암자 주변 돌무더기.
돌 표면에 하얀 실선처럼 박힌 광물.
소장이 돌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현미경 안 봐도 압니다. 100% 석면입니다.
이 채석장이 가동됐다면, 이미 분진은 공기 중으로 퍼졌을 겁니다.”
우리는 돌 시료 10여 개를 채취했다.
그때 스님이 나를 불렀다.
“PD님, 이 길 좀 보세요.”
암자로 오르는 새 도로 절개면.
중간층이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스님이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가 진폐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숨이 차고, 열이 나고, 오한이 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취재 노트에 적어둔 악성중피종 증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자란 스님
그 암자는 제천의 깊은 산,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나무 숲과 바위, 계곡이 어우러진 천혜의 공간.
스님은 그곳에서 태어나
70년을 한 번도 산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
그가 지키려던 것은
불경도, 수행도 아닌
산이었다.
“이 산이 병들면, 사람도 병듭니다.”
그 말은 방송 멘트보다 더 강했다.
분석 결과
일주일 뒤 전화가 왔다.
“시료 분석 결과, 석면 맞습니다.”
백석면(Chrysotile)과 갈석면(Amosite).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물질이었다.
석면은 한 번 폐에 들어가면
몸이 배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이 지나 암이 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더 무섭다.
취재는 이제 시작이었다
나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이 취재, 우리가 끝까지 간다.
국민 건강이 걸린 문제다.
안전장비 철저히 하고, 마스크 꼭 써라.”
우리는 광산, 채석장, 주민 인터뷰, 병원, 전문가…
전국을 돌며 취재를 이어갔다.
그 힘든 취재의 시작점은
대형 병원도, 정부 기관도 아닌
숲속 작은 암자의 스님 한 분이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2026년 현재
한국은 석면 사용이 전면 금지됐지만
과거에 지어진 건물, 폐광산, 채석장 주변에는
여전히 위험이 남아 있다.
환경 문제는 늘 그렇다.
보이지 않을 때 이미 늦어 있다.
그 스님은 말했다.
“나는 오래 못 살아도 괜찮습니다.
산이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환경을 지킨다는 건
결국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 산 위 작은 암자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