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그리고 네 마리의 숨결
우리 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고, 여름이면 초록이 마당까지 밀려온다.
가을의 산국화, 겨울의 주목과 소나무는 계절이 바뀌어도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네 마리의 생명이 우리를 지키고 있다.
뭉게, 별이, 아롱이, 레이.
오드아이 레이가 우리에게 온 날
레이는 흰 몸에 한쪽 눈이 호수처럼 푸른 오드아이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아내가 외롭게 지내던 아롱이를 위해 데려왔다.
손바닥만 한 몸, 골프공만 한 머리.
풍선을 달아준 작은 집 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풍선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이던 모습.
그 눈빛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먼저 담겨 있었다.
“레이도 감정이 있겠지.”
아내가 말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모를 어미에게서 태어나 우리 집까지 온 존재.
그 길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인연의 무게만은 분명했다.
노년의 사랑은 돌봄의 형태로 깊어진다
요즘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것은 유행이 아니다.
노년의 시간이 스스로를 비워가는 과정이라면,
동물은 그 빈자리를 생명으로 채워주는 존재다.
아내는 돼지뼈를 압력솥에 푹 고아 아침마다 내놓는다.
후지고기를 잘게 썰어주고, 닭가슴살을 쪼개어 나눠준다.
추운 겨울, 밖에서 밤을 지내는 아이들이 혹여 얼지 않을까 걱정하며.
나는 퇴근하면 일부러 차를 그들 가까이에 세운다.
엔진 소리만 듣고도 짖지 않는 뭉게와 별이.
“오늘 하루 지루하지 않았냐.”
말을 건네면 꼬리가 360도로 돈다.
돌봄은 언어가 필요 없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이미 충분하다.
동물과 함께 늙어간다는 것
거실 창 너머로 본다.
덩치 큰 별이의 눈을 핥아주는 뭉게.
별이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맡긴다.
저 장면은 경쟁이 없는 세계다.
힘의 논리 대신 신뢰가 있는 자리.
노년의 우리는 더 이상 앞을 향해 달리지 않는다.
대신 곁을 본다.
누가 옆에 있는지, 누가 나를 기다리는지.
반려동물과의 시간은 생산성이나 효율과 무관하다.
그저 함께 숨 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행복의 기준이 달라졌다
젊을 때는 성취가 행복의 척도였다.
지금은 다르다.
물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사료는 남아 있는지,
밤새 춥지는 않았는지.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네 마리가 무사히 아침을 맞이하는 것.
그들의 눈이 여전히 맑게 반짝이는 것.
“너희가 행복하니 내가 행복하구나.”
노년의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동행이다.
그리고 그 동행은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노년의 축복
괴산의 전원주택으로 내려온 뒤
우리 삶은 조용해졌지만, 더 깊어졌다.
봄이 오면 종합비타민과 구충제를 챙길 것이다.
그것이 올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거창한 계획 대신
이 작은 생명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
아내와 나는 이제 안다.
노년의 풍요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마당을 뛰노는 발자국 소리라는 것을.
산으로 둘러싸인 집,
그 안에서 우리는
네 마리의 숨결과 함께
천천히, 그러나 충만하게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이 조용한 마당이
우리 생의 가장 빛나는 계절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