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우리는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바꾼다

by 최국만


어제 에버랜드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었다.

그곳은 지난 30년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장소였고,

나는 그 기억의 한가운데 다시 서 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걷던 길, 유모차를 밀고 올라가던 언덕,

봄꽃 속에서 웃음이 터지던 그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어제의 하루 속에서 조용히 되살아났다.


그러나 더 깊은 시간은 호텔로 돌아온 밤에 시작되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다시 알게 되었다


호텔 방 안에는 따뜻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창밖에는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우리 안의 시간은 오히려 더 따뜻해지고 있었다.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웃음이 터졌고,

어느 순간에는 숨이 멈출 듯한 기쁨이 밀려왔다.


아이들은 분명 우리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아내의 깊고 단단한 사유,

그리고 나의 길고 느리지만 삶의 결이 묻어나는 이야기.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웃었고, 질문했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이 아이들이 우리의 말을 듣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따라오던 시간.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아이들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화는 세대를 넘어 흐르고 있었다


아내가 불교 경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 해 전부터 읽기 시작한 경전 속의 문장들,

그 안에 담긴 삶과 존재에 대한 질문들.


아이들은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삶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언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대화는 더 이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았다.

옆에서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권위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존재가 서로를 인정하는 자리로 옮겨갔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나는 세대가 교체되는 순간을 보았다


아이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문화와 예술, 음악과 철학.


큰딸이 민요를 불렀다.

낮은 목소리로 시작된 소리가 조용히 공간을 채웠다.


“여보, 당신 성량을 닮았어.”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시간이 우리를 떠나 아이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상실이 아니었다.

이어 짐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건너왔다


아이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외국으로, 유럽으로, 자기 삶을 찾아갔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기다렸다.

그리고 믿었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것을.


어젯밤,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이미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의 역할은 아이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설날은 세대가 서로를 인정하는 시간이다


설날은 단순히 가족이 모이는 날이 아니다.

시간이 어디까지 흘렀는지 확인하는 날이다.


어젯밤, 나는 알았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이지만,

더 이상 아이들의 앞에 서 있는 아버지는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아이들의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창밖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안의 시간은 고요했다.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세대의 교체는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밤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번 설,

우리는 아이들을 다시 만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어른으로 완성된 그들을 처음으로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깊고도 따뜻하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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