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그 길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히는 아버지가 되기까지

by 최국만


설 연휴를 맞아 가족 모두가 용인에 모였다.

지난해보다 짧은 연휴였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길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꺼냈다.

에버랜드.


늦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운전석에는 아이들이 앉아 있었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데리고 가는 부모가 아니라, 데려가지는 부모가 되었다는 것을.




30년 전, 봄꽃 속을 뛰어가던 아이들


30년 전 이 길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도 봄이었다.

개나리가 산자락을 따라 흐르고, 진달래가 햇살 속에서 흔들리던 날.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은 내 손을 잡고 뛰었다.


“아빠, 빨리 가요!”

“엄마, 저기 원숭이!”


나는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언덕을 올랐다.

아내는 아이들 뒤를 따라 숨을 고르며 웃고 있었다.


원숭이를 보고 까르르 웃던 얼굴,

호랑이를 보고 내 뒤로 숨던 작은 손,

홍학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아이들.


그날 아이들에게 세상은 처음 보는 기적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이들이 기적이었다.




오늘, 그 길을 다시 걷다


에버랜드로 향하는 도로는 한산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수많은 발자국이 겹쳐져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빠, 저거 사줘.”

“엄마, 빨리 와!”


대신 이런 말이 들렸다.


“아빠, 힘드시죠?”

“리프트 타고 올라가요.”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한때 내 손을 붙잡고 세상을 건너던 아이들이,

이제는 내 걸음을 살피고 있었다.


그 순간, 세월은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다가왔다.




사파리에서 마주친 낙타의 눈


사파리 버스에 올라 쌍봉낙타를 보았다.

그 낙타는 혼자 서 있었다.


자동차 소리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보았다.

깊고, 고요하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눈.


그 순간, 나는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밀렵 현장에서 풀어주던 동물들.


“이제 돌아가라.

너희가 살던 곳으로.”


자유를 되찾은 동물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자연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의 낙타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이들도 말했다.

“아빠, 낙타가 너무 외로워 보여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쁨은 그대로인데, 마음은 달라졌다


30년 전, 이곳은 순수한 기쁨의 장소였다.

동물은 신기한 존재였고, 세상은 넓고 환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안다.

기쁨의 이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이제 안다.

그래서 더 이상 “와, 사자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에버랜드를 나서며 아이들이 내 옆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존재가 따뜻했다.


나는 생각했다.


시간은 우리를 늙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깊어지게 만든다.


한때 나는 아이들의 전부였다.

지금 아이들은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이끌지 않는다.

함께 걷는다.


조금 느리게,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러나 훨씬 더 깊은 마음으로.




그날 이후,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30년 전의 에버랜드는 아이들의 세계였다.

오늘의 에버랜드는 나의 세계였다.


나는 그곳에서 세 가지를 보았다.

자라난 아이들, 늙어가는 우리, 그리고 여전히 흐르는 시간.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산이 지나갔다.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삶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뒤를 돌아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그날, 나는 에버랜드에서

동물을 본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아버지였던 나와,

이제는 한 인간으로 늙어가는 나를

조용히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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