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99조각, 그리고 우리의 시간

말보다 깊은 신뢰의 순간

by 최국만


동지가 지나고 해가 조금 길어졌다.

아직 공기는 차갑지만, 어둠은 예전보다 빨리 물러난다.

기종이네 집에 도착하니 오전 6시 50분이다.


2년 전, 나는 기종이와 함께 샤워를 하며 하나하나 가르쳤다.

수도꼭지 여는 법, 비누 거품 내는 법, 몸을 헹구는 순서까지.

이제 샤워는 기종이의 일상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맙다.


하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머리를 감고도 수건으로 말리지 않고 그냥 나오는 습관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마찬가지다.


1년 넘게 말했지만, 이상하게 그것만은 바뀌지 않는다.

발달장애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자료를 읽어보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기종이만의 작은 고집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그 고집마저도 이해하려 노력한다.




기종이가 밥상 옆에서 99조각 퍼즐을 맞추고 있다.

동물 퍼즐이다.

사파리 초원의 사자, 기린, 코끼리, 표범.


1년 전만 해도 10조각 퍼즐을 한 시간 넘게 붙들고 있던 아이였다.

나는 그때의 기종이를 안다.

그리고 지금의 기종이를 본다.


손놀림은 조금 느리지만, 눈은 분명해졌다.

20분 만에 퍼즐을 완성한다.

완성한 뒤 나를 힐끗 본다.


그 눈빛은 말보다 분명하다.

‘나 잘했지?’


“우리 기종이 벌써 다했어? 천재네, 천재야.”


나는 일부러 과장해서 말한다.

기종이는 웃는다.

그 미소는 기종이의 언어다.

그 미소 하나면 나는 하루가 충분하다.




노트에 날짜를 적는다.

퍼즐 소요 시간, 오늘의 컨디션, 작은 변화들.

이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기종이의 성장 일지이고,

시간이 쌓여가는 증거다.


언젠가는 내가 이 아이 곁을 떠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이 기록은 다음 활동지원사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나는 기종이를 돌보고 있지만,

사실은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나는 기종이에게 묻는다.


“기종아, 선생님이 좋으면 손으로 선생님 손을 탁 쳐 봐.”


기종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1분이 지난다.

나는 기다린다.


그리고 갑자기,

기종이의 손이 내 손을 ‘탁’ 친다.


순간 눈물이 핑 돈다.

그 짧은 터치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뢰가 담겨 있다.


“그래, 기종아. 우리 같이 있는 동안 행복하자.”


진심은 통한다.

돌봄은 일방향이 아니다.

나는 기종이를 가르치지만,

기종이는 나에게 사랑을 가르친다.




설 명절을 앞두고 기종이 어머니가 말했다.


“선생님, 매일 점심 사주시잖아요.

이번엔 우리 기종이 돈으로 같이 사 드세요.”


다음 날, 기종이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여준다.

2만 원이었다.


그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다.

어머니의 땀이 묻은 시간이고,

아이를 향한 감사의 표현이다.


나는 그 돈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접어 지갑에 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설 선물이었다.




기종이는 42세다.

만약 비장애인이었다면

가정을 꾸리고, 아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나 나는 안다.

기종이의 삶도 충분히 존엄하고,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퍼즐 99조각이 맞춰지듯,

우리의 시간도 하나씩 맞춰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노트에 기록한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미소 하나.


어쩌면 돌봄이란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도로 함께 걸어주는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속도를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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